한국일보

진정 아름다운 삶의 승리자

2013-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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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이 살아가는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과 행동으로 살아가려는 애씀과 노력이다. 물려받은 것은 없고, 도움도 없고. 정말로 힘든 역경 속에 하루하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만큼 아름다운 사람도 없을 게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사는 게 뭐 별건가. 주어진 하루를 부정하지 않고 긍정의 자세, 즉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지!”하며 살다 보면 그게 60년, 70년, 80년, 90년이 되는 거다. 하루하루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만이 성공을 하게 된다. 성공을 못하면 이름이라도 남기게 된다. 좋은 평으로의 이름 석자. 아무나 세상에 남기는 것은 아니다.


31년 전인 1982년 11월13일 오후. 텔레비전에선 권투가 생중계 중이었다. 라스베가스 특별 링에서 싸우는 선수는 미국의 레이 멘시니와 한국의 김득구였다. WBA 라이트급 세계챔피언 전. 15라운드까지 싸우는데 14라운드에서 김득구선수가 턱을 맞고 쓰러져 일어나질 않았다. 김득구는 긴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다. 허나, 깨어나지 못했다.
김 선수는 5일 동안 뇌사상태에 빠졌고 병원 측은 김 선수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산소마스크를 떼어내 그는 27년 10개월 10일간의 생을 마감했다. 그 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미국에서 보는 한국의 복서 김득구 선수가 챔피언이 되기를 여러 명이 함께한 자리에서 열렬히 응원했기 때문이다.
김득구 선수의 비사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2002년 곽경택감독의 ‘챔피언’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득구를 ‘권투영웅’이라 부른다. 김득구가 라스베가스로 떠나면서 남긴 말 중엔 “작은 관을 하나 준비했다. 싸워서 지면 링에서 걸어 나오지 않겠다”였다. 말 그대로 그는 최선을 다해 싸우다 쓰러졌고 관속에 잠들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지난 4월24일 충북 충주시에서 한국국가대표 여자권투 라이트플라이급(-48kg) 선발전이 열렸다. 인천시청 소속이자 여배우인 이시영(31)이 김다솜(19)을 꺾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4라운드 전으로 치러진 이 게임에서 이시영은 22-20의 점수로 판정승을 거뒀다. 한편에선 예쁜 이시영에게 편파 점수를 주었다고 항변하나 일단 게임은 끝났다.

연예계에 진출한 운동선수들은 있다. MC 강호동(씨름)을 비롯해 강병규(야구), 신민아(육상)등. 그렇지만 현역연예인으로 운동선수를 겸한 배우는 이시영이 혼자며 특히 여자연예인으로 권투를 하여 태극마크를 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이시영은 오는 아시안게임(인천·2014년 9월19일-10월4일)에 플라이급 한국대표로 출전한다.

오른쪽 무릎통증으로 병원에 다니던 이시영은 대회 사흘 전부터 중량을 줄이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그녀는 해냈다. 최선을 다한 정신력이 그녀를 한국의 국가대표로 만들었다. 주위에선 그녀를 ‘악바리’라고 한단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선 악바리근성이 꼭 필요하다. 한국인의 ‘악바리 근성’. 김득구와 이시영에게서 본다.

“죽으면 죽으리라!”란 말이 있다. 성서 ‘에스더’서(4장16절)에 나오는 말이다. 인도에서 구스까지 127도를 치리하는 아하수에로왕 때, 유다인 에스더가 왕비로 뽑힌다. 문지기였던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가 모함을 받아 유다 종족이 멸살을 당하게 된다. 그 때 왕이 부르기 전에 나가면, 죽음에 이르는데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며 나간다.

왕은 에스더의 간청을 듣고 유다민족을 살려주게 되며 모르드개는 왕보다 한 단계 낮은 높은 위치에서 왕과 함께 치리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에스더가 목숨까지 내놓는 죽음의 용기로 왕 앞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 유다민족은 모두 죽음을 당했을 것이다. 한 여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최선을 다한 용기가 한 민족을 살렸다.

김득구. 최선을 다하다 죽었다. 그러나 이름 석자는 ‘권투영웅’이란 말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다. 이시영. 12살이나 젊은 선수에게 악바리 같은 경기로 최선을 다해 이기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라”란 각오로 왕 앞에 나가 자기 민족 전체를 살렸다. 순간순간, 죽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 진정 아름다운 삶의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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