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브네 아카데미

2013-04-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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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고난은 하나님의 가장된 축복이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놓고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비극적 역사의 극적인 반전과 성장을 이루어왔다. 이스라엘이 큰 고난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성장의 돌파구가 된 것은 아카데미였다.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후 대다수 젊은 엘리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을 때, 그들은 심기일전하여 탈무드 아카데미를 세워 신앙교육에 힘쓰며 민족중흥의 재도약을 준비했다.

야브네 아카데미(Yavneh Academy)는 나중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또다시 훼파될 때 랍비 자카이(Zakkai)에 의해 설립된 탈무드 아카데미다. 야브네 아카데미가 태동하게 된 배경은 감동적이다. 로마의 디도 장군이 강렬하게 저항하는 유대 민족주의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겹겹이 에워싸고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훼파하려고 결심했을 때다. 당시 저명한 랍비 벤 자카이(Ben Zakkai)가 죽은 사람으로 가장하고 관에 누워 철통같은 포위망을 뚫고 성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목숨을 걸고 성 밖으로 나간 랍비 자카이는 그 길로 서슬 같은 로마 사령관 디도 장군을 만나 한 가지 담판을 시도했다. “귀하가 예루살렘 성을 불태우고 성전을 훼파해도 좋다. 그러나 서쪽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 야브네에 학교를 세워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장래를 교육에 걸겠다는 비장한 선택이며 전략이었다.
단순한 군인이었던 디도 장군은 랍비 자카이의 청원을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예루살렘이 함락 되자 자카이는 야브네로 들어가 아카데미를 세웠다. 그러자 동서 사방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오전에는 토라와 기도를 가르쳤고 오후에는 실용학문을 가르쳤다.

야브네 아카데미는 이스라엘 도제식 교육의 효시가 되었고 이곳에서 탁월한 유대인 두뇌(Jewish brain)을 수없이 배출했다. 비록 나라가 망하고 성전은 훼파되었지만 야브네 아카데미의 부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강인하게 살아남았고, 1948년에 성취된 이스라엘 독립의 초석이 되었다.

놀랍게도 한국에 야브네 아카데미 같은 도제식 학교가 둘 있다. 첫째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 학교이고, 둘째는 전영창 목사가 세운 거창 고등학교다. 오산 학교는 유영모 선생 같은 훌륭한 신앙의 스승 밑에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한경직 목사, 김교신, 함석헌 등 수많은 애국 지도자를 배출했다. 거창 고등학교는 경상도 변방에 있는 작은 기독교학교로서 그 흔한 과외나 보충 교육 따위는 없다. 대신 도제식으로 신앙과 인격 교육에 초점을 두고 가르쳐 훌륭한 리더를 다수 배출했다.

진정 교육을 생각하는 리더라면 사제(師弟)의 도리를 잃고 방황하는 교육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야브네 아카데미-오산-거창의 도제식 교육 모델은 침체기에 접어든 이 나라를 살리는 힘찬 돌파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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