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의 관심사들

2013-04-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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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국인들의 관심사, 신문에 실리는 글을 보거나 식당이나 모임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소리들의 내용을 보면 거의 정치 이야기들이다. 그저 멀리 이는 산불을 보는 듯 하는 광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 그 많은 관심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제시 할 수 있는 의견의 힘도 없다. 그저 아는 체, 잘난 체 하는 모순의 도구로 정리도 안 된 관심을 쏟아가면서 열을 낼 뿐이다.

어디를 가서 귀를 기울여보아도 미국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국민은 조용한 감시자 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권리를 무서운 침묵으로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가느다란 전기 줄을 타고 마지막 지점에 와서야 불을 밝히는 전기처럼 사람에게는 마음을 밝히는 동력이 흐르고 있다. 서정이다. 그 동력은 정치나 경제, 사회적 논제만이 거창하고 사람의 얼굴을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는 힘이다. 가물어 물이 마른 논밭에 양식이 자라나지 않듯이 심성이 메마른 사람에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자라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물처럼 필요한 것은 서정이다. 인간 심성의 근본은 정서로서 피가 구성 되어있고 심장이나 모든 근육의 조직도 정서로서 체계가 잡혀 있기 때문이다.


정서가 필요로 하는 물은 서정이다. 마른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서정이다. 현대라고 하는 얼마 되지도 않는 편리한 생활발전 앞에 인간이 무릎을 꿇고 노예가 되어간다.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있고, 문학이 시들어 가면서 장미 밭에서 숨을 거두어 간 마리아릴케처럼 인간의 정서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정서가 사라지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파멸이고 그 파멸위에는 인간으로서의 정의가 모두 사라진다. 종교들이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려든다면 거기에는 이미 종교는 없고, 문학과 예술이 서정 혼을 잃어버린다면 거기에는 이미 문학과 예술은 무능해 져 인간의 기본 구성인 인간정서를 위해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문도로서 오랫동안 인간의 서정을 찾아 헤매면서 여기까지 왔다.
길게 늘어진 전깃줄이 허공에 아무리 처져 있어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전기가 빛을 움켜쥐고 달리고 있다. 마지막 지점에 다다라서야 환한 빛이 되어주는 전기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짚일 전깃불을 나르는 가느다란 전선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단 한 가지 생각으로 나는 서정의 시를 써 왔고 심지어는 한국일보 칼럼난에도 서정의 수필을 도모하여 쓰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에게도 많은 기쁨이나 즐거움이 있었으나 그것은 그저 작은 기쁨이거나 작은 희열에 지나지 않아서 소리 나는 큰 웃음이 아니라 소리 없는 작은 미소로 흥겨워했고, 서러움이나 슬픔이 있었어도 그것은 그저 작은 서러움이나 작은 비애였기에 소리 내어 우는 통곡의 울음이 아니라 소리 없이 흐느끼는 작은 슬픔으로 가슴을 적시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아침이 있어 해가 뜨는 하루가 시작이 되고, 해가 지는 저녁이 있어 밤이 온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바람꽃처럼 고통과 고민이 없으면 삶은 완성이 되지 않겠지만 바람꽃이나 우리들의 기도는 융동의 칼바람이 아니라 작은 온기를 빼앗기지 않고 잔잔히 불어오는 화사한 바람이기를 원하는 바램이었다.
가는 세월에 시들어가는 삶의 기도는 누구나 평안이었다. 모두가 다 그러한 기도를 품고 가는데 어떤 힘이 그 기도에 환한 불을 지펴 줄 수 있을까?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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