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에 대한 이야기

2013-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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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익(공인 장의사)

크레딧카드의 죽음을 보자. 오래되어 낡았다고 해서 버리거나, 더이상 안쓰겠다고 가위로 잘라 버린다고 해서, 그 카드가 죽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카드를 만든데서 expire시키거나, 또는 년수가 다 되어 스스로 expired 돼야지 죽은 카드가 된다. 심지어 그 카드가 부셔져도, 카드 만든 자가 살았다고 하면, 그 ID로 쓸 수 있다. 카드는 멀쩡한데, 카드회사가 죽었다고 하면, 죽은 카드다. 때로는 개인 정보가 새어 나갔으므로 그 ID는 못쓴다고, 새로 발행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날아 오는 경우도 있다.

이 카드로 욕심대로 많이 쓰거나, 나쁜 곳에서 많이 긁으면 사고가 자주 나고, 결국은 사용 정지를 당하거나, 카드가 일방적으로 expired되어 버린다. 이 카드도 안 갚아서 죄가 쌓이면 사용 정지 된다.


컴퓨터의 죽음을 보자. 오래 되어 낡았다고, 쳐박아 둔들 죽을까? 밉다고 해서 망치로 부셔버려도 죽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이 만든 모든 운영 프로그램들은 각각이 ID가 있다. 그 만들어진 ID가 expired 돼야 죽은 컴퓨터가 된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램마저 먹통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원래의 프로그램 제조사에서 들어와서 죽은 프로그램을 살려 놓기도 하고, 멀쩡한 기능이 어느날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병들게 하여 시들 시들하더니, 갑자기 기능 마비가 되어 죽기도 한다. 사람의 경험과 쓸데 없는 기억이 많이 쌓여서 늙어지면, 판단이 흐려져 가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은 식물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비록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숨쉬고 내부 기관이 살아 있다는 것은 뇌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음에 대한 영어 표기는 “expired”인데, Webster 사전의 뜻은 “to breathe out from or as if from the lungs” 또는 “to breathe one’s last breath”, “to come to an end”로 표기되며, 마지막 날숨, 끝낸다는 의미다. 반대어는 “Inspired”인데, 뜻은 “to influence, move, or guide by divine or supernatural inspiration”이다. 이는, 들숨, 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영향을 받아 생명이 시작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영(Spirit)을 불어 넣는 존재가 있고, 그 영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면 죽음이 된다.

그런데 사전을 보면, ‘expiration’ 단어 바로 전에 나타나는 단어가 “expiation”인데, 이는 속죄, 죄를 씻음, 배상, 보상의 뜻이다. 사전에서도 보듯이 죄 다음에 죽음이 따라 온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사망으로 가는 길에는, 사고, 질병, 사형, 전쟁, 기근, 자살 등이 있겠지만, 그 길로 떠미는 것은 죄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수많은 선택 과정을 거치면서, 선악 간에 Credit과 Debit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죄와 허물이 쌓여간다. 결국, 죽음을 통해 죄 청산, 죄에서 해방, 탈출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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