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임교황의 새로운 발걸음

2013-03-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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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바티칸 교황청에 교황 호르게 베르고글리오가 프란치스코란 명칭하에 새 교황으로 취임했다. 그는 자신의 공식이름을 왜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에서 땄을까? 새 교황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성자 프란치스코의 일생이 희생과 사랑, 봉사에 의한 삶으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1181-1226)가 누구인가? 4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온몸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삶을 살다 간 평화의 메신저였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영적으로 무기력한 궤적을 그리고 있을 무렵, 성 다미아노 교회당 십자가 밑에서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탁발수도회를 세워 종교개혁운동의 첫발을 내딛은 인물이다.


프란치스코의 탁발수도회는 십자가의 신앙으로 그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그의 개혁운동은 자발적 가난, 겸손, 고난의 신앙이 중심이었다.오늘날 세상의 모습은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당시 교회상황과 삶의 수준만 바뀌었지 그 내용은 너무나 유사하다. 물질만능주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기주의, 그로 인한 부패와 비리, 성추문, 동성애 문제 등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는 세속화의 문제가 이제는 임계지수를 넘어 거의 폭발직전 수준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바티칸 교황청에 새로 부임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신선한 개혁적 영적 결단은 종교계 뿐 아니라 전세계 인류에 큰 기대감을 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교계가 깨끗하게 변화되면서 제 위치를 찾아 지구촌에 평화와 질서, 인류공존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종교의 역할은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유도하고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이 세상에 평화와 질서, 공존을 가져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도리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역할을 해온 부분이 없지 않다. 가톨릭과 그리스도교 간에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만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11세기 말부터 거의 200년 동안 중세 서유럽 로마가톨릭은 중동의 이슬람국가뿐 아니라 동방정교회 나라들까지 공격해 들어가면서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대규모의 심자군 원정을 감행했다. 이 원정은 교황은 교황권 강화를 위해. 영주들은 영토확장을 목적으로 살육과 약탈로 이루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유럽에서는 1618년부터 30년동안 개신교와 가톨릭간에 수많은 인명이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졌다. 양측이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유럽을 피바다로 물들인 끔찍한 종교전쟁이었다.

이번에 새로 바티칸에 취임한 교황이 솔선수범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시대가 종교계에 요구하는 강력한 바람 아닐까? 교황의 등극은 가톨릭이 개혁을 일으키겠다는 일종의 무언의 선포나 다름없다. 가톨릭 교황청의 새로운 움직임은 개신교에도 영적각성이 일어날 때가 되었음을 아울러 시사한다. 가톨릭이 변화하면 자동적으로 사회 모든 부문에도 개혁이 바람이 일 것이다.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부문이 종교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인구 약 11억에다 바티칸 교황청을 중심으로 세계 각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규모의 가톨릭이 개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앞으로 세계역사의 흐름과 판도를 바꾸어놓을 거대한 변화의 물꼬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나 다름없다.

이 흐름에 따라 이제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퇴폐할 대로 퇴폐한 이 세상 모든 종교계에 개혁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면 한다. 이런 바람은 종교계뿐만 아니라 미국과 한국의 각계, 그리고 우리들의 가정 및 개인생활에도 힘차게 불어야 한다. 이 봄에 교황의 새 등장이 개혁이라는 거대한 배에 희망의 닻을 올릴 수 있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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