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윤리적 이기주의

2013-03-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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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경제팀 차장대우)

지난달 대만계 이안 감독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날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감독상과 시각효과상 등 4개 부분을 수상했다. 축하의 들썩임은 아니었다. 영화 제작에 참여했지만 임금을 다 받지도 못하고 거리에 나앉은 시각효과 관련 종사자들의 항의의 들썩임이었다. 이들은 SNS의 프로필 사진을 녹색으로 변경했고 녹색 바람은 SNS를 통해 퍼졌다. 녹색은 CG를 입히기 전 배경색상이 되는 색상으로 CG가 없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라고 말할 수도 없다.

속사정은 이렇다. 이 영화의 CG를 담당했던 ‘리듬 앤 휴즈’(Rhythm& Hues)사가 지난 2월 12일 파산했다. 대형 기업의 파산 소식이 별로 새롭지도 않은 요즘이지만 이안 감독의 태도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버린 것이다. 이안 감독이 수상소감에서 리듬 앤 휴즈의 특수효과 담당자들에 대한 파산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은 것에 이어 시상식 후 인터뷰에서는 아예 시각효과에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며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몇 달째 월급도 못받은 채 실업자가 돼버린 이들의 분노를 샀다.


어떤 이들은 이안 감독도 임금을 받는 피고용주의 입장인데 굳이 이안감독을 비난할 수 있냐고도 했다. 이안 감독에게 파산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월급을 주는 고용주도 아니니까 말이다.

헌데 빈부 격차를 벌리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윤리적 이기주의라는 측면에서 이안감독의 발언은 옳지 못하다. 남이야 어떤 도움을 줬건 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천민 자본가들의 자세와 뭐가 다를 바 있겠는가. 가뜩이나 박한 봉급으로 기술자들의 기름을 짜냈던 제작자들보다 4년간 함께 작업한 감독이 동료들의 고통을 배려 못하는 것이 이들에게 더 큰 배신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한인 업계에서 벌어진 일을 지켜보면서 비슷한 생각에 빠졌었다. 한 한인 업체의 피고용자들이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임금, 처우에 대한 불만 등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헌데 개인적으로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유가 있었다. 회사의 한 젊은 간부가 신입 고용을 늘이고 기존 직원을 추리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업무시간 기록시 근무 시간을 줄이도록 직원들에게 강요를 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측에서는 또래 직원들끼리 친밀하게 어울리면서 발생한 오해라고 했지만, 치열한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그런 언사를 농담으로 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양측이 원만한 해결로 사태수습을 하길 바라며 두 사건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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