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어가는 길에도 관념의 차이

2013-03-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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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중국 고대국가들 가운데 섞여 있었던 오나라의 책사 손무가 지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처럼 적을 알면 반드시 승리 한다는 미지수의 내용이 있다. 죽은 다음에는 어디로 가서 또 무엇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싸우면서 또 살아야 하는지를 미리 알면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죽은 뒤 그 길에서 벌어질 잡다한 일에 대한 작전을 미리 짜면서 조금은 안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걸 아무도 모른다. 그저 막연할 뿐이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도 갈 곳이 어딘가에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미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passed away” 즉 살던 이 세상을 “지나갔다”고 말을 하고, 한국인들은 살다가 “돌아갔다” 고 말을 한다. 이생의 한 순간은 어디를 향해서 지나가는 길의 한 순간이었고, 목적지를 두고 왔다가 그 곳을 향해 이곳을 지나갔다거나 다시 돌아갔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관념이고 표현이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이 죽음이다. 종교의 태생 기초 원리이고 종교의 지속 생명이다. 그런 막연한 상상을 펼쳐놓고 인생이란 길에 나선 나그네의 여정,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지금은 겨울 끝자락에 이어 봄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별로 춥지는 않아서인지 내린 눈이 해가 뜨면 조금씩 녹아내리더니 며칠 지나면서 쌓였던 눈들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다 사라졌다.
한순간에 온 세상의 색깔을 바꾸어 놓았던 흰 눈의 위력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 적부터 꿈을 가지고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얘기 한다. 어떤 아이는 장군이 되겠다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또 어떤 아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을 하는가 하면, 세상이 바뀌어 경제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 세상이 되어선지 돈의 위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돈 많이 버는 사장이 되겠다는 신종의 꿈을 말하는 애들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왜 사느냐 하는 인생의 가치관을 말하는 아이는 없을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 답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저 사는 데로 사는 사람들 뿐이다. 대학을 다니는 신선한 학생들을 보아도 그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답을 얻어 보려고 하면 그 대답은 형이상학적 인생의 고뇌와 철학은 없고 거의가 취직에 연관이 되어 있다. 삶과 인생, 그리고 생명에 대한 예전사람들의 고뇌와 철학은 현대에 와서는 바람만 썰렁한 광야에 버려진 휴지조각이나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인생은 있고 삶은 있다.

갈 곳의 집은 살아서 지어야 한다. 죽은 목수가 아니라 산 목수가 살 집을 짓듯이 죽어서 갈 곳의 집은 살아 있을 때 지어 놓아야 한다.설계대로, 짓는 대로 죽은 다음의 거처 할 곳은 지어진다.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 이웃을 알며 살아야 한다.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 한다. 선은 집을 짓는 목재이며 각가지 재료다.

옳은 생각은 설계며 희생은 집을 짓는 노고다. 죽은 다음에 거처 할 곳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집을 제대로 지을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는 세상은 어둡고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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