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처

2013-03-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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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김연아가 17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에서 우승했다. 모든 언론은 ‘여왕의 귀환’이라고 칭송을 보냈고 2010년 뱅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내년 소치올림픽에도 올림픽 2연패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주말 동안 한국TV마다 방영하는 김연아의 점프와 고난도 기술, 우아하고 환상적인 예술적 연기를 보고 또 보았다. 20개월의 공백을 이겨내고 복귀에 성공한 김연아가 어린 시절, 트리플 악셀을 연습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천정에 매달린 원통 또는 점프를 도와주는 긴 장대 같은 도구가 김연아를 따라다니고 막 소녀티가 잡히는 어린 그녀가 계속 공중으로 뛰어올라 빙글 빙글 도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 피겨 종목은 김연아의 무릎과 허리부터 꼬리뼈, 고관절, 허리 디스크까지 온몸에 부상과 통증을 불러왔다고 한다. 김연아의 피멍 든 상처투성이 발이 오늘을 있게 했다.
또한 독일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엄지발가락은 본래 형체를 알 수 없고 열 발가락 모두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발 사진이 인터넷에 떴는데 얼마나 충격적인지 그녀를 모르던 사람들까지 발레리나 강수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강수진은 하루 토슈즈 3~5켤레를 망가뜨리면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천 안쪽이 종이로 덧대어진 토슈즈는 부러지면 그냥 버려야지 계속 신으면 발을 받쳐줄 힘이 약해져 발 부상 위험이 있다.
“아침에 눈 뜨면 늘 어딘가가 아프고 아프지 않은 날은 내가 연습을 게을리 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는 강수진은 ‘아픔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수년 전 뉴욕 링컨센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풍부한 표현력과 화려하고 섬세한 테크닉을 뉴요커들에게 보여준 바 있다.굳은살과 상처투성이 발을 ‘지겹고 힘들어도 계속 하라, 조금 아파도 참아라’ 달래가며 하루 19시간 연습에 매달린 결과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된 것이다.

건강과 장수, 부를 상징하는 6월의 탄생석인 진주는 은은하고 신비스러운 광채로 인해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진주 또한 상처 난 조개 안에서 영롱한 구슬로 태어난다.

조개의 껍질 바로 밑에는 외투막이 있어서 몸을 둘러싸고 있다. 조개껍질과 외투막 사이에 모래알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분비물로 이를 감싸고 이것이 쌓여서 이루어진 고통의 덩어리가 바로 천연진주이다.

보석의 왕이라는 다이아몬드도 그렇다. 다이아몬드 세공은 형태 그리기, 쪼개기, 절단하기, 둥글게 만들기, 단면깎기의 특별한 과정을 거친다. 부단하게 갈고 닦는 세밀한 세공을 거쳐 영롱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가 탄생하는데 현미경으로 보면 상처투성이라고 한다. 수천만 번 이상을 다듬어진 끝에 찬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보석이 완성된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상처 없이 이루는 영광은 없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민 1세인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신체도 마찬가지이다.

나이드신 부모님의 나무껍질처럼 거친 손과 발뒤꿈치, 검버섯 핀 손등, 얼굴 가득 패인 주름을 유심히 살펴보자. 이 주름 하나, 굳은살 하나마다 부모님의 피땀 어린 노고가 서려있다. 부모님의 굵은 주름, 거친 손길이 우리에게 따뜻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했으며 등록금이 되고 용돈이 되고 바람과 추위를 막는 옷과 신발이 되었다. 그러니 이 모든 주름과 굳은살은 이민생활의 훈장이랄 수 있다.

세상을 살면서 시련과 고통 없이 무난히 살아온 인생이 몇이나 있을까? 비단 신체뿐 아니라 마음 속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 친구에게서 많은 상처를 받는다. 또 위로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한 가지 상처는 끌어안고 봉합하며, 치유해가며 살고 있다. 그러니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것이 삶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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