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을 맞은 개구리 대행진

2013-03-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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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뉴저지 주에서는 봄이 되면 개구리 행진으로 장관을 이룬다. 호수가 많기 때문에 각 호수에서 개구리들이 산란을 위하여 길을 건너간다. 하이웨이를 횡단하기 때문에 위험천만이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후세를 위하여 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을 잊지 않고 결사적인 행군을 감행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구리까지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고통을 감수한다. 그것은 미래에 희망을 두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위기(危機)라는 말을 만들 때 위험과 기회를 합친 것은 슬기로운 사상이었다. 위험이 있지만 위험도 하나의 기회가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앞날에 대한 희망만큼 인간을 활기 있게 만드는 영양제는 없다. 기운이 없고 좌절된 인간은 그만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농도가 엷은 것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는 것이다. 비관적인 문턱에 복이 들어올 수는 없다. 희망을 갖는 다는 것은 보다 높은 신조(信條)를 갖는 것이다. 욕심의 철학이 아니라 꿈의 철학을 갖는 것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는 돌파구를 믿는 것이다.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의 승리를 믿는 것이다. 거짓의 일시적인 성공을 보고도 허무해지지 않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명 위에 확고하게 서는 것이다. 가지가 살아야 할 의미를 확실하게 잡은 사람은 희망이 없을 수 없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큰 것을 보는 것이다. 큰 목적을 위하여 작은 것은 버릴 수 있는 용기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넘어진 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날씨에 여향을 안 받는 것이다. 폭풍은 폭풍대로 의미가 있다.

이스트맨(Max Eastman 미국의 저명한 문필가)은 그의 명작 ‘유머 감각’에서 유머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인간의 고통이나 비극이 유머로 중화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유머는 절망적인 사람에게서 결코 볼 수 없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희망에 찬 사람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유머는 감정적 모든 질환의 치료제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유머는 인간의 본능 속에 잠재한 가장 순수한 희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두 글자만큼 위대한 말이 또 있겠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당신의 시간에 활력을 주고/ 당신의 앞날에 밝음을 약속합니다/ 지옥 입구에 붙은 푯말입니다(神曲)/ “이리로 들어가는 자는 희망을 버리라”/ 희망이 끊어지는 것은 산소 공급이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허무와 무의미라는 정신적 마비를 가져옵니다/ 희망의 공급만이 행복을 향하여 새 출발하게 합니다/ 희망은 사랑에 의해 생기고/ 사랑은 희망에 의해 키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희망이 움트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은 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의 그 빛난 얼국을 보십시오/ 그것은 희망의 샘이 솟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희망은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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