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서울에서 온 음성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내가 ‘언니’라 부르는 분인데, 미 중부 폭설소식을 듣고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건만, 왠지 오늘은 그 목소리가 더욱 따뜻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최근 교통사고로 크게 놀란 적이 있고 장례식에도 여러 번 참석했던 때문일까? ‘밤새 안녕?’이란 인사에 거침없이 ‘네’라 답할 수 있는 나의 현 상황을 열렬히 감사하고, 이제껏 맺어온 ‘인연’들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친언니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언니뻘인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내 경우엔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언니뻘인 사람들을 만나면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어리광을 부렸던 것 같다. 그렇긴 해도 ‘언니’라는 호칭을 쉽게 사용하진 못해서 특별한 인연을 감지한 경우에만 ‘언니’라고 불러왔다. 언니 자랑하는 사람도 팔불출인지 모르겠으나, 그렇다 해도 오늘은 팔불출이 되기로 했다.
내겐 20-40년 동안 ‘언니’라 불러온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 세 사람, 미국에 세 사람으로, 그 여섯 언니들은 각각 내 인생에 서로 다른 특별한 의미를 주는 사람들이다. 그 귀함의 무게를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언니들도 나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 것은 내가 팔불출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자주 못 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게으름 탓에 연락조차 자주 못하는데, 언제 어디서건 가슴 깊이 빠져드는 묵직한 사랑과 믿음을 느끼게 되는 것을 어찌 설명할까? 그들의 사랑스런 성향들이 어떤 신비한 기운과 어우러져 나와의 필연적 관계가 생긴 것 같다.
목숨 끊는 일도, 출가하는 일도 실패한 후 스승의 도움으로 지금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교수가 된 언니. 경양식집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던 어느 날 갑자기 문학박사의 자긍심으로 살던 자신이 언제 ‘술집 주모’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바로 다음날 업종을 바꿔버린, 문학 보다는 사업에 천재인 언니.
한밤 폭우 속에 호수로 나가 그 아름다움을 즐기다가 경찰검문에 걸려 엉뚱하게 자살금지 경고를 받았던 언니. 자신은 이혼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마치 엄마라도 된 듯 내 손목을 끌고 다니며 결혼준비를 서둘러 주었던 언니. 마음에 넣은 친구에게 뭐든 열심히 퍼주다가 아픔만 되돌려 받은, 그래서 이젠 내가 옆에서 뭐든 퍼주고 싶은, 자식 잃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술가 언니. 출판업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국가 차원의 출판을 고집하는, 스스로 모시는 부처님만큼 해맑은 출판인 언니.
실은 올케 언니도 이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올케-시누이답지 않게(?) 오빠를 제쳐놓고 우리끼리의 인연을 귀하게 여기며 속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더 자랑하자면, 어느 언니보다 더 나를 지켜주고 나 역시 가장 아끼는 언니가 또 하나 있다. 하지만 인연이 묘해서 내가 언니라고 부를 수는 없는 또 하나의 언니. 내 친동생이다. 심성이 깊고 착한 동생은 항상 내게 언니의 모범을 보인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항상 따끈한 온기를 전하는 언니 아닌 언니. 이젠 내가 동생의 마음속에 온기를 전하는 제대로 된 언니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