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안 드림

2013-03-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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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국계 미국인으로 첫 주한 미국 대사인 성 김이 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서울에서 성장하다가 일본을 거쳐 1975년 캘리포니아로 이민 갔다. 이번에 한국계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가 말레이시아 주재 미 대사로 6일 내정되었다. 윤 차관보는 초등학생때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85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 아시아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미주한인 1.5세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김종훈은 4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릉 산동네를 떠나 메릴랜드 빈민가로 이민왔던 14세 소년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어 일군 수많은 재산과 자리를 포기하고 갔다가 국적 논란과 여러 루머 속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차라리 미국에서 한국계 아메리칸을 아무런 편견 없이 믿어주고 능력으로 인정해 주네 싶고, 제 발로 찾아간 고국에서 배타성 민족주의로 인해 내침을 당한 것 같아 그 이유야 어떻든 마음 한쪽이 씁쓸하다.

우리는 미국에 오면서 누구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은 자녀교육에 성공하고 자수성가하여 좋은 집, 좋은 차, 지역사회에 봉사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일 것이다. 이들은 이 땅에서 성공하면 언젠가는 금의환향하고 싶다는 ‘코리안 드림’을 가슴에 품는다.

내가 목표한 금액만 모으면, 내가 하려고 한 일을 잘 끝내면 일가친척,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 잔치도 벌이고 그들에게 미국에서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이야기도 자랑하고 수고했다는 위로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나름대로 성공한 한인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따스한 환대는 커녕 ‘고생만 잔뜩 하고왔네, 뭔, 폐를 끼치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 하는 안스러움과 부담스러움이 섞인 얼굴을 대하기 일쑤이다. 또 1.5세와 2세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 중에는 서울로 가서 자신의 겉모습과 똑같은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싶어 한다.

그래서 원어민 교사가 되어 영어를 가르치러 가고 아이비 리그 출신 몇 명이 의기투합하여 한국과 미국간의 무역을 해보겠다고 무작정 한국으로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민 1세와 1.5세, 2세들의 ‘코리안 드림’은 순간 사라지는 무지개빛 환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이 다르다보니 많은 혼란 속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이민 1세들은 미국에 가면서 팔고 간 땅이나 집이 그새 10배 가까이 올라 기껏 목돈이라 여기고 가져간 돈은 겨우 전셋집을 얻을 뿐이고 친지나 친구들은 시간 약속 없이 무조건 마음대로 일정을 잡고, 나름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그게 성공이야’하는 무시를 은연중 당한다.

2세들은 “한국말도 잘 못하면서 뭘 하겠다고?”, “여자애가 왜 그리 뚱뚱해, 살 좀 빼라.”, “얼굴이 그게 뭐냐, 피부 관리도 좀 해라” 등등 가장 가까운 주위에서 상처 받고 그 아픔에 어쩔 줄 몰라 한다.


한국 중산층 주부들은 까페에서 ‘브런치’ 먹고 피부미용실에 가서 전신 마사지를 받는데 익숙한데 반해 뉴욕의 한인여성들은 일년 열두달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세수 하고 잠자기 바쁘다. 또 개성대로 사는 거지, 왜 남의 시선을 인식하는 그 비싼 명품옷과 가방을 걸쳐야 하는 지, 결국 이 모든 것이 코리안 드림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국으로’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사는 아이들 곁에 묻혀야지” 하고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접곤 한다.

2012년 월드컵 한국 축구 4강 신화를 이룬 네덜란드인 히딩크, 독일계 한국인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 외국인들에게는 너그러운 한국이 왜 자신과 같은 핏줄인 한국계 미국인에게는 이렇게 편협한 사고방식을 보여주는가.

국경을 넘은 해외인재를 등용하여 글로벌 시대에 맞게 한국의 발전을 이루고자 한다면 정치인을 비롯 한국민의 마음이 좀더 크게 열리기를 기대한다.그래도 단군의 핏줄이기에 저절로 발길이 가서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여린 마음을, 한국말 못한다고, 너무 뭘 모른다고 수군대며 그 때묻지 않은 순진함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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