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산(財産)이 재산(災産)이 되는 경우

2013-03-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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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재산은 많을수록 좋기는 하지만 그것도 쓰기 나름이다. 미국 사람들은 대체로 여축이 없다. 평소에 쓸 것 다 쓰면서 풍족하게 살아서인지 아니면 미국이란 나라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도록 제도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그런지 일주일 벌어서 홀랑 쓰고 한 달 벌어서 있는 대로 풍덩풍덩 쓴다. 그러니 통장은 비어있고 그것도 모자라면 손쉽게 쓴 죄 값으로 크레딧 카드에는 갚아야 할 빚만 적지 않게 쌓여 있다. 그것마저도 갚지 못할 사정이면 크레딧 카드빚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탕감 해 주겠다는 사설 회사도 있으니 사는 데에는 별로 불편이 없는 나라다.

한국인들은 다르다. 한국이 근자에 와서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긴 했지만 예부터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육이오 전쟁 후로는 나라 전체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보리 고개를 겨우겨우 넘기는 그야말로 무거운 짐을 쌓아 놓은 지게처럼 가난을 어깨에 짊어지고 겨우겨우 살아와서인지 돈이 생겼다 하면 되던 안 되던 저축부터 하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겉보기 보다는 여축이 일본 사람들 빼고는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많다. 그것이 국가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가정 경제의 지표를 튼튼하게 바꾸어 놓았다. 부자가 되면 쌓이는 것만큼 잘못하면 인심이 메말라 간다는 속설이 있다. 가난한 시골 동네에는 담이 있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잘 사는 도시 동네에는 벽이 높고 두껍다. 재산이 관계를 단절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도 작은 땅 한 조각을 차지하겠다고 형제가 서로서로 고소를 하는 삼성 일가의 치사하고 낯 뜨거운 재산 싸움.
재산(財産)이 재산(災産)이 되니 가정의 재난이요 국민의 수치다. 고위직 인사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릴 때 마다 들추어내는 것들이 거의 다 부정 축재다.

믿었던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형 부정축재, 면서기는 밀가루 배급에서, 구청장쯤 되면 도로공사에서, 시장 쯤 되면 각종 건설 사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쓰레기 처리장 문제 까지, 장관이 되면 장관답게 국가 산업에, 대통령이 되면 국내와 국제적으로 검은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가난에서 배운 개인의 위기의식이 만들어낸 국민의식이다.

시민들은 땀을 흘려 벌은 몇 푼의 돈을 저축하며 그것도 재산이라고 빙그레 미소를 짓는데 재벌이다 대부다 하는 사람들은 쌓아놓은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노려보며 바쁘게 계산하는 천재적인 더러운 계산으로 술책의 얼굴을 덧보탠다.
미국에서 산다고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국인들의 재산적(財産的) 정서, 미국 이민을 부러워하던 옛 한국의 가난이 어제였는데 세월 지나 먹고 살만 하니 이제는 미국 이민자들을 눈을 아래로 깔고 내려다본다. 조국, 고국, 아니 그리워하던 고향 땅이라고 따스한 마음을 품고 그곳에 가기가 망 서려 진다. 그곳은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재산(財産)이 덕 없이 잘못 쌓이면 그 재산(財産)은 재산(災産)이 될 수도 있다는 것쯤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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