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늑대소년 이야기

2013-03-05 (화) 12:00:00
크게 작게

▶ 민 경 훈 논설위원

오바마가 수주 째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난”이라고 부른 연방 예산 자동 삭감(일명 시퀘스터)이 발동된 지 5일 지났지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고 미국인들의 일상은 평온하다. 주가도 폭락하기는커녕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예상 외로 시민들의 동요가 없자 머쓱하게 된 것은 백악관이다. 하긴 오바마도 시퀘스터 발동 며칠 전에는 급작스런 변화는 없을 것임을 시인했다. 예산 삭감의 효과는 한번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생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평소에는 오바마에 우호적인 언론들도 예산 삭감의 파급 효과에 관한 그의 경고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CNN의 캔디 크로울리는 시퀘스터가 발동돼도 연방 항공국(FAA)은 2008년보다 5억달러나 많은 예산을 갖게 될 것이라며 공항에 엄청난 교통 체증이 발생할 것이란 라후드 교통 장관의 교통 대란설을 비판했다.

AP는 수만명의 교사가 해고될 것이란 오바마 행정부의 주장은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며 항공업계는 공항에 대대적인 교통 체증이 일어날 것이란 행정부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시퀘스터 재난설을 가장 강력히 비판한 사람은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이름을 날린 밥 우드워드다. 시퀘스터는 공화당이 먼저 제안했다는 백악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 이것이 원래 오바마 아이디어였음을 밝혀내 백악관의 미움을 사고 있는 그는 예산 삭감으로 돈이 없어 항공모함을 페르샤 만에 보낼 수 없다는 백악관 주장을 “미친 소리”로 일축했다.

지난 11월 대선 승리 이후 여세를 몰아 공화당을 압박하던 오바마가 이번 시퀘스터와 관련해서는 처음으로 수세에 몰린 모습이다. 만약 시간이 가도 대다수 국민이 시퀘스터의 고통을 직접 느끼지 못할 경우 오바마는 오지도 않은 늑대가 왔다고 소리쳐 주민들을 분노케 한 늑대 소년 비슷한 모습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번 예산 삭감은 850억달러 규모로 3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연방 예산의 2%가 조금 넘는 규모다. 2%라도 삭감은 삭감이니까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은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불황으로 20%까지 월급이 깎인 사람도 있다. 그러고도 다들 살아가는데 연방 정부만 2% 예산이 줄었다고 죽겠다는 것은 미국의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소리다.

이번에 깎인 돈의 절반은 국방 예산으로 이라크 전과 아프간 전이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는 지금 줄이는 것이 당연하며 군수업체를 제외하고는 그 피해를 직접 느끼지 못한다.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불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일괄적으로 깎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빚이 매년 1조달러씩 느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깎지 못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하다.

오바마가 이 점을 지적하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하원은 삭감 프로그램 선택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제안했으나 오바마는 즉시 이를 거절했다. 오바마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바마는 예산 삭감에 상응하는 증세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이미 증세에 동의해준 공화당으로서는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시퀘스터가 경제에 나쁘다면 증세는 더 나쁘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투자와 근로, 저축에 모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때도 증세에 합의해줬다고 지역구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는데 또 이를 허용한다면 의원 자리를 내놓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민과 동성애, 총기 규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서 이미 민주당에 양보를 한 공화당으로서는 증세 반대만이 유일하게 당을 단합시킬 수 있는 이슈다.

지난 연말 증세와 이번 시퀘스터로 4조달러의 국채 감소가 예상된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장기적인 미국 재정 건전도를 생각한다면 예산 삭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진짜 재정 적자의 원인인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 복지 예산 개혁은 이번에 손도 대지 못했다. 이제 이들이 미국 재정을 파탄시키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를 논의할 때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