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사과.책.병아리의 모임

2013-02-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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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친구 넷이 모였다. “오늘 점심엔 무엇을 먹을까?” 제각기 먹고 싶은 것을 말한다. “난 떡, 난 자장면, 난 만두, 난 국수” 이렇게 달라서야 한 가지로 묶을 수 없다. 그래서 각자가 좋은 것을 먹기로 하였다. “우리 내일 어디로 소풍을 갈까?” “넓은 바다로 가자, 푸른 들로 가자, 시장구경을 하자, 아니야 우리 할머니 댁으로 가자” 이것 역시 각자의 기호가 달라서 한참 동안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제각기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좋아하는 것이나, 보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달라서 결국은 제각기 따로따로의 행동만을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잡다한 사람들이 뒤섞인 사회에서는 같이 행동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끼리끼리 모이지 않는가. 취미모임, 학술모임, 관광모임, 창작모임, 스포츠모임 등이 활발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만 의지한다면 어떻게 큰 사회나 국가가 형성되겠는가. 엉기는 힘이 없이.


혹시 이런 잡다한 사람의 모임이 주는 혜택은 없을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풍파를 겪으면서도 인류사회가 꾸준히 발달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 봐요. 매번 각자가 좋아하는 것만 먹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지?” “정말이야 한 가지에 집착하는 일에도 물릴 때가 되지 않았나요?”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한 번 시식하면 어떨까?” 그래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본 얼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음식도 먹어볼만 하다는 표정들이다.
“우리 새롭게 삽시다. 이미 있는 두 세 가지의 다른 점을 모아서 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면 어떨까?” 모두의 눈빛이 빛났다. 그래서 새로운 맛을 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어리석게도 왜 지금까지 외고집만 부렸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디 이런 경향은 음식에 한정된 것일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천장을 쳐다볼 때일까. 아니다. 반대로 여럿이 떠들거나, 놀거나, 말씨름을 하거나...할 때 갑자기 솟아날 수가 있다. 흔히 여럿 속에서 부닥치다가 톡 튀어나올 수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지금까지 숨어있었음은 놀라움이며 기쁨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고 싶다. 그럴수록 다른 점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서로 자극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은 마음이 편하지만 성장력이 약한 것이 아닐까.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에너지가 충만하고 새로운 발명품이 풍부하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겉모습이 다른 것처럼 생각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르다. 이들은 서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각자가 지닌 다름이 하나 둘씩 모여서 새로움을 산출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이민이 계속되고 있음은 변화의 에너지가 계속적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뜻이 된다. 마치 자동차에 개스가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것처럼.
새로운 사람, 경험이 다른 사람, 세계관이 다른 사람, 직종이 다른 사람, 취미가 다른 사람, 생활양식이 다른 사람, 가족 구성이 다른 사람 등을 피할 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친구가 되면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삼는 것이다. 자녀들이 비슷한 친구들하고 사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다채로운 친구를 사귐으로서 생각을 넓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마르지 않는 샘, 끊이지 않는 샘, 맑고 깨끗한 생각의 샘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누가 주는 것이나, 이미 있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이 선택하고 노력하면서 얻을 수 있는 보물이다. 그것은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자 하는 것이다. 바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섞이면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샘물이다. 공.사과.책.병아리의 모임은 그 뜻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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