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돼지저금통의 추억

2013-0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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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연이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직도 경기하강을 막기 위한 뾰족한 카드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여파로 대학을 졸업한 미국의 대학생들이 취업은커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부채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부채는 현재 3,700만명이 평균 2만3,300달러씩이고, 대졸자중 10%는 평균 5만4,000여 달러의 부채상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또 상환이 불가능한 학자금 부채문제로 졸업생 수 백 만명이 파산상태에 있다. 이런 현실을 접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예전에 우리가 한국에서 집집마다 고이 간직하고 지내던 빨간 돼지저금통에 관한 추억이다. 1970년대 한국에선 온 국민이 ‘저축중흥’의 기치 아래 집집마다 빨간 저금통을 두고 열심히 저축했다. 경제가 어려웠던 그 시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저축의 색다른 즐거움과 보람을 맛보면서 한푼 두푼 돼지 저금통에 넣으며 큰 희망과 꿈을 키웠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 돼지 저금통은 사람들로부터 홀대를 당하면서 퇴물이 돼버렸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적이 있다. 그래서 저축을 포기한 2030세대를 두고 ‘축포세대’라는 말도 생겼다고 했다. 저축의 중요성을 모르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저축의 심벌이었던 돼지저금통이 토해내는 한탄이다.


빨간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았던 시절, 동전이 가득한 돼지저금통을 개봉할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과연 얼마나 모였을까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었다. 지금보다 생활패턴이 훨씬 열악했던 당시 돼지 저금통에 잔돈을 넣어 저축의 힘을 기르며 어린이들에게 큰 교훈을 줬었다. 돼지저금통에서 얻은 그 저축정신이 근검절약의 생활자세나 금 모으기 애국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가정과 나라의 경제를 튼실하게 만든 소중한 자원이 됐다.

그 근검절약, 저축의 산 교훈을 이제는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경기불안이 지속되고 교육비, 생활비 등 부담이 늘어나 저축개념이 점점 멀어지고 이제는 아예 엄두조차 못 내게 된 것일까, 아니면 경제가 풍요롭다 보니 잔푼 모으기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저축에 대한 향수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은 요즘 요지부동인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물론 경기회복에 대한 근본대책은 정부당국이 앞장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들 개개인도 자신의 앞날에 대한 대비뿐 아니라 경기회복에 좀 보탬이 될 수 있는 근검절약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예전처럼 한푼 두푼 저축하던 생활을 다시 일상으로 실천한다면 티끌이 모여 태산을 이루고 물 한 방울이 모여 무한한 힘을 지닌 바다를 만들어 내는 효과를 가져 온다. 비록 푼돈이라도 꾸준히 모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목돈이 된다. 그렇게 모여진 큰돈은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큰일을 해낼 수 있다.

개미의 몸은 비록 작지만 그들이 함께 모여 이루는 일은 어마어마하다. 땅속으로 파내려가 만들어놓는 개미집의 범위는 작은 풀장 만할 정도이다. 개미들이 모아놓은 식량도 산더미 같다.

영어속담에 ‘Many a little makes a mickle’ 이라는 말이 있다. ‘mickle’에는 ‘다량’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우리나라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아이들에게 근검절약의 정신을 가르쳐 주는 데는 평소 한푼 두푼 모으는 생활실천의 저축밖에 없다. 한인가정에서도 목돈마련의 초석이 될 수 있는 귀여운 복 돼지저금통 하나씩을 자녀들에게 주어 저축정신을 길러주자면 너무 시대에 동떨어진 진부한 생각일까?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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