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격려와 비판

2013-02-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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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어느 여름날 한 강도가 가정집의 담을 넘었다. 강도는 주인의 목에 칼을 대고 돈과 패물을 요구했다. 집 주인은 당시 독립 운동가이자 존경받는 아동 문학가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이었다.

방정환 선생은 소장한 돈 390환을 강도에게 주어 보냈다. 강도는 황급히 돌아서 달아났다. 그때 선생이 “돈을 얻었으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라”고 소리쳤다. 강도는 한마디로 “고맙소!” 하고 달아났다. 얼마 후 수갑에 채워진 한 젊은이가 순경과 함께 방정환 선생의 집에 나타났다. “이 놈이 오늘 새벽 선생의 집을 침입해 돈을 털어간 그놈 맞죠?“ 그러나 방정환 선생은 ”그 사람은 내가 잠시 돈을 빌려준 귀한 손님이니 풀어주시오.“ 라고 말했다. 풀려난 도둑이 얼마 후 선생을 찾아왔다. ”도둑을 이렇게 잘 대해 주시니 염치가 없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도둑은 방정환 선생의 따뜻한 한 마디 격려에 감동을 받고 새 삶을 살았다.


격려의 반대는 비판이다. 건설적인 비판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언제나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분쟁과 다툼은 비판의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함으로 발생한다. 그러므로 리더는 파괴적 비판과 건설적 비판 중 옥석을 가려내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도 늘 비판에 시달렸다. 하루는 한 중년 부인이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의 넥타이가 너무 길어 보여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그러면 부인께서 원하는 길이로 잘라 주십시오.” 부인이 가위를 꺼내웨슬리 목사의 넥타이를 싹둑 잘랐다.

웨슬리 목사도 “부인의 혀가 너무 긴 것 같아 이 가위로 조금 잘라드리고 싶습니다.” 놀란 부인은 그제서야 자신의 입술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 부정적인 비판이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였다. 한 마디 말이라도 부정적인 비판은 상처를 주고 절망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격려는 사람을 살린다. 희망을 준다.

예수님은 격려의 대가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수많은 실패와 배반으로 그 인생이 얼룩진 베드로가 있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감동적인 격려로 보여 주었다. 예수님의 격려는 언제나 특별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 격려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을 가도록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지금 한국과 미국의 국회에선 고위 공직자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똑같은 청문회라도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미국에선 임명받은 공직자의 장점, 정책능력, 리더십을 검증하고 격려한다. 한국은 어떤가. 시종일관 비판이다. 깎아내리고 약점 들추기다. 이런 속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수님처럼 흠이 있는 사람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다. 그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그것을 실현하도록 돕는 격려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이고 대가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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