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류는 종교와 함께 살아간다

2013-02-0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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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기독교는 크게 구교와 개신교가 있다. 구교는 천주교요 신교는 프로테스탄트 즉 일반 교회를 뜻한다. 불교의 뿌리가 힌두이즘에 있듯이 개신교의 뿌리는 구교요 구교의 뿌리는 유대이즘이다. 유대이즘이 기독교의 뿌리가 됨은 교회가 정경으로 삼고 있는 신약과 구약 중 구약성경이 유대인들의 근간이며 역사요 뿌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창시자는 2000여 년 전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예수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는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성경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러 독생자를 보냈는데 그 독생자가 예수다. 예수는 33년을 살았고 마지막 3년을 복음과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 처형으로 죽음을 당했으나 3일 만에 부활했다.

이렇게 시작된 기독교는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23억5천4백만 여 명이 신자다. 200여개국가에 전파돼 있고 종교 부문에선 최다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가장 문화가 발달해 있는 유럽은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길을 걸어온다. 2000년에 달하는 기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지금도 같이하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宗敎)의 사전적 정의다.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물신 숭배 등의 초기적 신앙숭배를 비롯해 샤머니즘이나 다신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등의 세계종교로 제도적, 비제도적인 것이 있다”.
이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어린아이가 아빠를 믿는 그런 믿음과 같다. 수십 길 낭떠러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아빠와 아이가 있다 치자. 이 때, 아이에게 손을 벌려 오라하는 아빠에게 아이는 의심 없이 안긴다. 아차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는 상관치 않고 아빠에게 안긴다.

아빠를 믿는 아이의 믿음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수 도 있는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극단적 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이에게 손을 벌려 오라하면 아이는 가지 않는다. 아이에겐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그렇다. 믿음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의심은 종교적심성에서 가장 불필요한 요인이 된다.

이처럼 종교는 어린아이에겐 아빠의 존재 같은, 신이나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해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해결을 간구한다. 간구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기독교의 핵심사상은 부활로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 영생한다는 사상이며, 인간에겐 가장 강한 믿음을 요구한다.

초대교회 시절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제자들과 유대교에서 개종한 바울에겐 전도의 핵심이자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제자 베드로 같은 경우는 설교 한 번에 5,000명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 그럴 것이 세상의 힘 중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하는 힘 외에 더 큰 힘이 무엇이 있으랴. 믿음 안에선 죽은 자의 부활이 현실이 된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긴 역사를 가진다. 인류의 기원과 종교의 기원을 같은 시점에 놓을 수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종교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기에 현재 특수한 예, 일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나라를 제외하곤 모든 인류가 종교의 자유를 갖고 살아간다. 종교는 그만큼 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아니 될 순기능 역할을 한다.
종교인 숫자를 보면 기독교 23억5천4백만명(가톨릭19억1천5백만명, 개신교4억3천9백만명) 이슬람 16억3천5백만명, 힌두교 9억8천만명, 불교 4억4천만명으로 총 54억9백만명이다. 71억의 세계인구 중 76%가 종교인이다. 이밖에 물신숭배 등의 하급 종교인들까지 포함하면 세계인 모두는 종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인류는 종교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종교가 한 치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다. 북한이다. 북한엔 김정은이 신(神)이다. 그는 절대자보다 더 높은 곳에 군림한다. 인류역사상 어떻게 이런 곳이 아직도 존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믿음을 통해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순기능적 종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류는 종교와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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