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억력을 아웃 소싱하다.

2013-02-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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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저 A님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러지요. 잠간 기다리세요” 그의 눈이 바쁘게 디지털 스크린을 훑어본다. “어머님의 생신 날짜를 알고 싶어요. 카드를 보내려고...” “아이, 고마워라. 기뻐하실 거예요” 그녀의 손이 바쁘게 스마트폰을 만진다. “우리 모임에서 어느 날 만나기로 하였더라, 잊어버렸어요” “여기 있어요. 곧 알려 드릴게요” 그 역시 전자기계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어느 틈에 전자기계와 공존하고 있다.

복잡한 기계에는 중추를 맡는 핵심부분과, 기타부분을 맡는 곳이 따로 있게 마련이다. 보통 중추부분을 맡는 일을 제외하곤, 다른 사람들이 도울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웃 소싱이 흔하게 되었다. 복잡한 기계의 간단한 부품은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내일 수도, 다른 나라일 수도 있다. 때로는 기계뿐만 아니라 단순한 한두 마디의 문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서원조차 아웃 소싱을 한다. 이런 경향이 다른 대륙에서 가정교사의 역할까지 한다는 말에 놀란 일이 있다.
아웃 소싱의 장점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서로 이득을 본다. 일을 맡기는 쪽에선 경비를 절약할 수 있고, 일을 맡은 쪽에선 직장을 확보하게 된다. 그래서 아웃 소싱 시대가 활발하게 열린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국내 생산력이 저하되면서 아웃 소싱 하던 일을 국내로 다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둔하게도 그동안 아웃 소싱은 큰 기업에서만 할 수 있는 현상으로 알고 있었는데, 각 개인들도 아웃 소싱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우리의 기억력을 전자기계에 맡긴 일을 가리킨다. 이렇게 우리는 기억해야 할 대부분의 일을 기계에 맡겨서 홀가분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잃은 것은 없을까. 우리들의 기억력을 퇴화시키는 일은 없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면 편리한 생활은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기업에 중추부분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특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결코 아웃 소싱을 할 수 없는 귀한 부분이다. 즉 개성, 지능, 감성, 의지, 사회성, 주의력...등을 보존하면서 기억력의 부분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기억력의 퇴화를 줄이는 첫째 방법으론 중요한 것을 기억도 하고, 스마트폰에 입력도 한다. 필요할 때는 첫째 기억을 되살려보고, 둘째 기계의 힘을 빌린다. 두뇌의 저장 창고에 있던 기억력이 창의력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억력의 감퇴현상에 경종을 올리는 까닭이다.

둘째, 기억력의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 기계적인 기억은 스마트폰에 맡기고, 자신이 하는 일의 중심부분은 항상 기억 저장 창고에 쌓아둔다. 셋째, 기억력을 강화하는 게임을 한다. 즐거움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기계의 제한성이고, 인간의 융통성이다. 이런 뜻에서 슬기로운 아웃 소싱으로 개인의 기억력을 증가시킴이 현명하다.

우리들이 의식하지 않고 전자기계에 기억력을 아웃 소싱하는 이유는, 간편하게, 즉각적으로, 저렴하게, 어디서나 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혜택은, 과학이 발달한 시대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알고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고려할 일은 우리의 기억력이 감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기억력도 다른 것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감퇴하는 것이 자연 현상이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전자기계에 과잉 입력되거나 자신의 기억저장 창고가 감퇴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기억 내용의 질과 빈도에 따라 저장방법을 고려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일이다. 아주 간단한 것도 기억을 거부하고, 중요한 것도 기계의 도움 없이는 기억하기를 꺼린다면, 완전히 아웃 소싱의 힘에 기댄 모습일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에 살거나 현명한 판단력은 내 자신에 달렸다. 시대의 발달이 나를 도울 수 있고, 해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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