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욱일승천기 전시 유감

2013-02-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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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훈(사회1팀 기자)

지난주 뉴욕일원 한인사회를 크게 동요시킨 ‘사건’(?)이 있었다. ‘욱일승천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도쿄의 뉴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물론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때로는 사회가 금기시하는 영역까지도 넘나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직된 사고의 틀을 깨뜨릴 수 있는 영감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기자 역시 믿고 있다. 하지만 ‘욱일승천기’를 소재로 한 작품까지 그 자유로운 예술론의 범위안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의 상징물이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기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가, 그 상징성이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그들에게는 전세계를 호령하며 나부끼던 그 깃발이 ‘잘나가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느껴질 수 있으나, 한국 등 피해국가 국민들에게는 군국주의 총칼아래 잔인하게 짓밟힌 암흑기를 떠올리게 한다. 가해자에게는 지나간 역사일 수 있지만 피해자들에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해방된 지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상처가 깊기도 했지만 그들에게 돌려받지 못한 빚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진심어린 뉘우침과 사과’이다. ‘욱일승천기’가 아직 우리에게 쓰라리고 아픈 이유이다.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 자주 비교된다. 두 나라는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경험한 뒤 눈부신 발전을 이뤄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상반된다. 과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 탓이다. 독일인들은 전쟁의 책임을 히틀러에게만 돌리지 않았다. 유대인을 비롯한 인종학살로 인해 드리워진 양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국민이 함께 사죄하고 책임을 나눠 짊어졌다. 20세기 유럽 예술에 지대한 공헌을 한 독일에서 나치 문양의 예술작품이 상상될 수 없는 이유이다.

일본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수는 없다. 일본은 현재의 우방이며 미래를 함께 해야 할 동반자이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된 역사인식 만큼은 바로 잡아야 한다.
스스로 깨우치지 못할 바엔 큰 목소리로 일러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 오는 17일 뉴저지 팰팍 위안부 기림비 앞에서 출발, 맨하탄 일본총영사관을 거쳐 유엔 본부까지 30마일 구간에서 진행되는 ‘전범 상징물 욱일승천기 퇴출염원 평화 마라톤’이 이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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