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 많던 별들은 어디로

2013-02-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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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의 신앙

▶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인간이 자연을 등지면, 자연도 인간을 멀리 떠나는 것일까? 요즘은 어디를 가도 밤하늘의 별들을 보기가 힘들다.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한해 첫 시작을 빅베어 산장에 놀러가서 아름다운 설경 속에서 주말을 보내고 왔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의 주변 나무숲들이 흰 눈 속에 잠겨 평화롭던 어린 시절의 겨울정취를 자아냈다. 소복이 쌓여 있는 푸른 소나무 가지에서 흩날리는 눈 꽃 사이로 뚫려 있는 길들을 따라 오랜만에 맑고 청정한 정초의 겨울을 맛보고 왔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높고 맑은 그 곳 빅베어 산장에서도 어릴 적 보았던 무수한 별들의 황홀한 속삭임의 잔치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다. 달은 여전히 어렸을 때 보았던 달이건만, 고요한 밤하늘만은 예전과 딴판이었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북두칠성을 비롯한 몇 백개 정도의 별들뿐이었다. 그나마도 힘들고 지친 듯 희미하게 맥이 없다. 어렸을 적 볼 수 있었던 밤하늘에 가득 뿌려진 은가루 같은 영롱하게 반짝거리던 별빛의 찬란함이 아니었다.

하긴 인간 세상이 메말라가니, 머리 위 하늘 속 별들이라고 무슨 신바람이 나겠는가! 그래서들 틉틉한 먹구름 속으로 모두들 숨어버린 모양이다. 정말 그 찬란한 별들을 죽기 전에 꼭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현상은 비단 밤하늘만의 일은 아니다. 여름 한철 고기 잡고 멱 감던 시냇물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생명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집근처 조그만 개천가만 나가도 수많은 송사리 피리 떼들이 들끓었고, 눈쟁이, 올챙이, 물방개들이 어린 동심과 함께했다.

너 댓살 어린애들마저 꼬막손으로 돌 틈 사이에서 새끼 가제들을 잡을 수 있었고, 신고 있던 고무신으로 시냇물을 담아 피리새끼들을 잡아다가 집안에 버려진 빈 유리병에 키우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큰애들은 아예 키 정도 물이 흐르는 큰 시냇가나 들녘 강변에 나가 온 종일 멱을 감고 고기를 잡기도 한다. 바위만 들추어도 메기, 뱀장어, 꺽지가 잡히고 잉어 가물치들이 작살과 그물로 잡히던 그 시절엔 TV나 게임머신이 없어도 하루 종일 외로울 일이 없었다. “자연” 그 자체가 신 바람나는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정말 “자연”은 언제나 인간과 놀아주고, 맛있는 영양분까지 주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왔다. 그렇기에 자연을 사랑해야 인간이 살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요즈음 세상은 머리통만 커져서 자연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산다. 현대는 인지가 개발되고 산업이 발전하여 옛날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풍요로움 속에서 사는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 비행기, TV, 컴퓨터, 인터넷 등 인간에게 온갖 편리함을 무한정 제공해 주는 살맛나는 세상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 사람과 자연을 등지고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요술세상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같은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현대인은 예전보다 더욱 큰 불안과 고독을 안고 살아간다. 몇년 전 언젠가 고대 총장을 지내신 분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옛날 원시 시대 땐 “배가 고파서 못 살겠다”고 하던 인간이 산업화 시대가 되니 “힘들어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 쳤습니다. 그런 인간이 이제 컴퓨터 인터넷을 통한 21세기 정보화시대가 되니 “외로워서 못 살겠다”며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가자고 떠드는 겁니다. 정말 일리 있는 말씀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철학자 루소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언제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는지 조차 관심없이 사는 현대인의 삭막한 삶 안에는 그래서 풍요로운 삶과는 달리 사는 것이 메말라 가는 걸까? 자연과 이웃에 눈길을 주고 사는 따뜻한 세상이 그래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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