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욕망과 스타일

2013-01-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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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교도소 심리학자)
모든 인간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나 그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심리학자 아들러(Adler)는 개개인의 각기 다른 욕망충족의 방식을 개인의 인생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인간을 생물적인 존재로 보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욕망 구조는 동물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이나 유아와 같이 밥을 배불리 먹고 환경이 안전하기만 하념 다 되는 것으로 돼 있진 않다. 전문가 의견에 의하면 인간욕망의 한 중요한 구조는 남에게 높은 평판을 받으며 남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 원하는 심리와 동시에 남의 무시와 경멸을 몹시 두려워하는 심리로 되어있다고 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보면 미국인의 대다수는 남에게 존경을 받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욕망구조는 인간의 사회적 등급의식과 직결되어 있어서 존경받는 부류는 사회의 상류급이요, 멸시의 대상자는 하류급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한다. 미국은 개인주의 자유주의 나라라고 하여 여기서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사회적 상승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 속에서는 욕망의 노골적인 분출과 욕망충족의 각양한 스타일들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한국이민자들의 사는 모습을 돌아볼 때 거기에는 몇 가지 두드러지는 스타일이 눈에 뜨인다. 첫째는 비싼 동네에 큰 집을 사서 고급차를 부리며 자녀를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 스타일이요, 둘째는 한인회와 동창회를 비롯하여, 그 밖의 각가지 회를 조직하는 스타일이며, 셋째는 교회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을 들 수 있다.


비싼 집과 고급차와 명문교는 자기의 고급됨을 세상에 알리는 표시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회를 조직하여 그 회의 회장이 되는 일은 사회적 욕망의 당연한 구현이다. 모든 회원이 다 회장이 되고 싶어 할 때 일어나는 역리와 부조리, 그리고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분규 때문에 나라전체가 시련을 겪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명문교 출신일수록 동창회를 밝히는 이유는 잘난 사람들끼리 모여 자기네의 잘남을 확보해야 할 필요에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집단적 자애주의(Collective Narcissism)라고 부른다. 객지에 나와서 고고생 하는 외로운 이민들에게 교회는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교회는 이민들이 그들의 짓눌린 욕망을 분출하는 마당도 되고 있다. 기독교가 무엇이냐는 인식의 통일은 없는 반면에, 신앙에는 유식은 해롭고 오히려 무식이 이롭다는 편향이 짙게 돌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의 한인 이민교회는 벌거벗은 욕망과 무식이 난무하는 장소를 방불케 한다.

이상의 스타일들은 미국 본토인에게도 있고 다른 민족에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민에게 있어서 이 스타일의 발현은 그 정도를 넘고 있다. 정도가 지나치는 욕망충족의 방식은 스타라기보다 오히려 콤플렉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고급을 좋아하는 비단 한국인 뿐만은 아닐 것이다.
남 하는 대로만 따를 것이 아니라 개성을 키우며 책도 좀 잃어서 생각을 깊이하고 언행을 인격자답게 하자는 말은 이제 고언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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