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살아있다

2013-01-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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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나에게 다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무리들을/ 부둣가에 몰려든 가엾은 난민들을/ 거처도 없이 폭풍에 시달린 이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나는 황금빛 문 옆에 서서 그대들을 위해 횃불을 들어 올리리라.”
이 시는 19세기 미국 시인 에마 래저러스가 쓴 시 중 일부로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이민자들이 볼 수 있도록 자유의 여신상 좌대에 새겨져 있다. 초기에는 수 백 만명의 유럽인들, 이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난민들에게 미국은 절망을 뒤로 하고 새로운 희망을 열어 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미국을 찾아든 수많은 이민자들은 모두 성공을 다짐하고 아무리 어렵고 지저분한 일이라도 가리지 않고 땀흘려 일하면서 미국적 삶과 제도, 미국식 문화에 어설프나마 동화하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다. 나도 언젠가 돈을 벌면 윤택하게 살 수 있고 자녀교육도 남부럽지 않게 시킬 수 있다는 꿈과 희망, 바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추구하며 말이다.


‘미국의 정신(American Spirit)’으로 누구든 열심히만 하면 기회의 땅에서 잘 살수 있다는 여망, 그 아메리칸 드림이 갈수록 쇠퇴해져 가고 있다. 반면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석좌교수 제러미 리프킨은 유럽에 체류하며 집중 분석한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미국의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변화를 요구했다.

개인의 자율성과 부 축적의 핵심인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급변하는 미래사회를 지탱 할 수 없다. 글로벌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유러피언 드림이야 말로 미래의 새로운 비전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는 아직도 미국인들이 개인적인 물질추구를 강조하는 개척시대의 미국적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는 것. 반대로, 공동체내의 관계, 문화적 다양성, 삶의 질, 환경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이 더 가치가 있다는 논리의 유러피안 드림이 급변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전이라고 그는 확실하게 진단한다. 미국적 가치의 변화가 없으면 아메리칸 드림은 머지않아 막을 내리고 타인과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시대가 온다는 게 리프킨 교수의 시각이다.

금세기 최강국으로 오로지 자국위주의 이기적이고도 편협된 정신으로 국제정치, 외교, 종교 심지어 국내에서까지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미국이 심각하게 경청해야 할 대목임에는 분명하다.

개인의 가치만을 중시하는 미국적 정신에 대변혁이라 할 수 있는 이민법개혁안 초안이 이번에 공화, 민주 양당에 의해 초당적으로 마련된 것은 미국에 대한 우려를 뒤집는 획기적인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하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는 1,100만명 서류미비자들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부여하는 것은 전 국민이 다함께 잘 살아보자는 공존의식에서 나온 사회적 대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변화, 대수술을 단행한 이번 양당의 개혁법안 초안마련은 시들어가는 아메리칸 드림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인다. 재정절벽의 출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미국의 경제에도 회복의 청신호가 켜질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합법적 신분을 위한 서류미비자들의 공식적인 활동으로 이제 변호사 사무실, 병원, 우체국 등 관련분야의 경제가 크게 활기를 띨 것이다. 이들이 제출하는 건강진단이나 보험, 이민신청, 통신, 우표, 서류 등과 천문학적이 될 이들의 세금은 위기에 처한 미국의 재정난관을 타개시키는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번개혁기본안은 그동안 침체됐던 미국의 경제, 사회분위기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다시 한 번 미국이 세계 초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살아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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