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워싱턴 행진 50주년

2013-01-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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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1963년 8월, 25만 명이 워싱턴을 향하여 걸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야 한다는 시위였다. 그 선두에 선 것이 33세의 청년 목사 마틴 루터 킹 박사였다. 워싱턴 행진(March on Washington)은 후세에까지 많은 영향을 준 미국역사의 금자탑이 되었다. 그 당시 정부는 이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하여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였으나 킹 목사와 시위 지도자들의 비폭력 원칙에 의해 평화로운 행진으로 끝났다. 워싱턴 행진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나는 꿈을 갖는다’(I have a dream) 때문이다.
“나는 꿈을 갖는다.

나의 아들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니라 그들의 품성과 인격으로 평가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나는 꿈을 갖는다. 이 나라 미국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의 천국이 되어 우리 모두 손잡고 함께 일하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즐길 평화의 동산이 반드시 될 것이라고... 나는 꿈을 갖는다.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을 캐낼 수 있음을. 이 나라를 덮은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교향악으로 바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나는 꿈을 갖는다. 낮은 골짜기는 돋구고 높은 언덕은 낮아지고 황무지가 평탄해지며 신의 영광과 공의가 두루 펴질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킹 목사는 이 연설에서 모든 피부의 색깔은 아름답다는 것과 하나님의 평등한 창조와 조화를 말하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지구촌, 싸우지 않는 협력 사회, 뒤로 처진 자를 이끌어 주는 복지사회를 역설하고 있다.


킹 목사는 워싱턴 행진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백인들을 불신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형제이다. 백인의 운명과 흑인의 운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백인의 자유와 흑인의 자유도 서로 맞물려 있다. 어느 한 쪽도 혼자 걸어갈 수는 없다. 우리 흑인들이 자유를 갈망한다고 해서 증오의 잔으로 자유를 마실 수는 없다.” 킹 목사의 민권운동은 반항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복지를 호소한 것이며 싸움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지고(1964) 그의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함과 동시에 1월을 ‘흑인의 달’로 지키게 한 것은 결코 흑인 사회에 대한 아첨이 아니다.

킹 목사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 복지를 향한 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조리와 불의와 폭력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꿈이란 그것이 고상하고 남을 위하는 것일수록 행복의 에너지가 된다. 가난한 자란 돈이 없는 자가 아니라 꿈이 없는 자이다. 그의 평화운동은 월남전 반대운동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암살당함으로써 그의 짧은 39년의 생애는 막을 내렸다.

그의 연설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를 교도소에 잡아넣어라.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리라. 우리 집에 폭탄을 던지고 우리 아이들을 위협하여라.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리라. 그러나 확실히 기억하라.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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