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루는 길지만

2013-01-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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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하루는 길지만 지나고 나면 시간은 짧게 느껴진다. 직장에서 일거리가 많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해서인지 그래도 하루가 짧게 느껴지지만 요새같이 일거리가 많지 않은 날에는 하루가 길고 지루하다. 그러나 하루는 길지만 열흘은 짧고 열흘보다 한 달은 더 짧다. 일년은 그보다도 더 짧고 십년은 말 할 수 없이 짧다. 십년이 짧다 하지만 인생은 찰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순간적이다.

시간이란 것이 원래는 짧은 것인가? 모양새도 갖추지 못하고 훌쩍훌쩍 지나는 것이니 시간의 모양은 찾을 수가 없다. 인생을 다 살고나서 내가 한 일이 무엇이고 어떠했는지 따져보면 시간의 모양이 거기에서 나온다. 삶의 모양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은 시간의 모습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무엇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거기에다 걱정까지 보태며 지냈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가 산 것이 시간의 모습이다. 삶이 짧으니 시간도 짧다. 인생살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곧 서글픈 답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욕심도 부리고, 남을 흘겨보기도 하고, 정당치 못한 방법이라도 써 가면서 재산을 모으려 한다. 예뻐 보이려고 원색의 피부를 감추고 화장품도 사서 바르고, 나름대로 티를 내 보이려고 비싼 옷도 사서 걸치고 값비싼 장신구로 손가락이며 손목이며 심지어는 목까지도 치장을 한다. 나이 들어 노인이 된 사람들을 보면 인생의 가치를 깨달았는지 그제야 많은 것을 내려놓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어 인간의 정도(正道)를 한발 한발 거르려고 시간의 길에 발을 내민다. 다 늦어 깨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란 우리나라의 노래 가락이 있다. 술 마시고 흥청망청 정신없이 놀라는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숨차게 뛰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짧은 인생 차근차근 살 준비를 하라는 속 내용이다. 바쁘다는 사람이 무슨 여유를 갖겠나?. 바쁜 사람이 무슨 시간의 얼굴을 만들겠는가? 바쁜 사람이 무슨 수로 시간의 모습을 알뜰하게 빚어내겠는가?

내 모습이 바로 시간의 모습이고 시간의 얼굴이 바로 내가 만든 내 얼굴이다.
한 해가 또 왔다. 지나고 나면 한없이 짧은 시간의 한해가 또 왔다. 길게 잡아야 100년이란 시간 속에서 같이 살다가 비슷비슷한 시기에 모두 살아질 우리들인데 이 우리들이란 우리 속에서 천만가지 온갖 일이 벌어진다. 쓰다듬어 주고 싶도록 아름답게 사랑을 하는 사람, 이웃을 돕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목적 없이 떠도는 사람, 습관적으로 남을 헐뜯는 사람, 은혜를 받고도 배반하는 사람,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 직장에서 남모르게 상사를 비하하는 사람, 문학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문학을 한다는 사람, 하느님의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당을 옛날 전차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 하느님을 이용하거나 예수님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 색깔의 배합도 모르면서 미술을 하는 사람, 부자가 되어보겠다고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하품만 하는 사람, 구경 가서 조는 사람, 태어나는 사람, 발버둥 치며 죽는 사람, 천태만상이 바로 시간의 얼굴이고 지나간 일들이 시간의 흔적이다. 지나간 해는 그렇다 치고 하얀 새해에는 어떤 얼굴을 만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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