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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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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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에서 4년 전 자살로 죽은 국민배우 최진실씨와 남동생에 이어 이번에 또 최진실의 전 남편 유명 야구선수 조성민씨의 자살은 계사년 새해를 맞은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이른바 베르테르의 효과, 연쇄적인 충동자살이 끊이지 않겠구나 우려하던 기우가 사실로 확인됐다. 부산에서 그 사건이 있은 후 7명이나 자살을 했다는 끔찍한 보도가 나왔다. 이 우려는 불안하게도 이곳 한인사회에도 이어졌다. 지난주 영화 큐레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한인여성이 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한국에서 일년에 1만5000여명, 하루에 평균 40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통계는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임을 실감나게 하는 증거이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위이고 OECD 자살률 최하위인 그리스에 비해 10배가 넘는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우리 자녀들은 좋은 성적과 이른바 유명 대학 진학, 취직에 대한 어려움과 미래의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홈 스윗트 홈(Home Sweet Home)은 이제 모두가 분주한 생활속에서 잠만 자고 다시 일터로, 학교로 향하는 일회성 쉼터가 되어 버렸다.


우리 사회는 점점 인간미가 실종된 정글의 법칙만 존재한다.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 가면 갈수록 많아진다. 살기가 그만큼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살은 안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살아내기가 너무 버거워 죽고 싶은 심정이 들 때마다 깊이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종전의 심리학은 프로이드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 두 가지로 정리했다. 하지만 이에 대비시켜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는 제 3의 이론, 즉 ‘로고테라피’가 현대 정신의학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의사인 닥터 프랭클과 다른 정신의학파들이 주장하는 이 학설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 참담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무언가를 위해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학설이 조명을 받은 것은 이 이론의 창안자 닥터 프랭클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실존을 생생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의 나치시절 유대인 학살을 위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죽음의 공포와 지옥보다 더한 극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희망이, 어떤 종류의 존재에도 거룩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의 체험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생생하게 일깨운다. 그는 아무리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고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과학기술의 끝없는 발달로 물질의 풍요가 넘쳐나고 줄기차게 이어지는 생존의 치열한 매일 매일의 삶, 지구촌 곳곳에서 죽고 죽이는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고통의 시대, 사람들은 정신적 불안감과 우울, 공허와 고독감에 떨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닥터 프랭클은 그의 체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의사를 찾아와 묻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은 의미가 없습니다.” 닥터 프랭클은 아마 이런 답변을 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음의 수용소보다는 낫지 않은가!”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짐으로써만이 누구나 삶의 질문에 대답 할 수 있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 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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