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신과 탈모

2013-01-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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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특사가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자를 방문한 자리에서 덕담을 나누며 선거 여신의 비결(?)을 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박 당선자를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선거의 여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박 당선자가 선거의 여신이든 여왕이든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된 여신이라는 단어이다. 선거의 여신이라는 단어 속 여신을 영어의 단어로 표현하면 goddess 즉 여성 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다” 라고 하지 못하고 “일 것이다” 라고 표현한 것은 여신이 반드시 goddess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뉴욕의 관문에는 상징이며 명물인 ‘자유의 여신상’이 높이 위엄을 보이고 있다. 영어로는 Statue of Liberty 로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오랫동안 Statue of Liberty 라는 뜻은 단순히 ‘자유의 상’ 인데 왜 여신이라고 했을까 궁금했는데 최근 나는 여신이 goddess가 아니라 여자의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풀어보면 ‘여자의 몸을 가진 자유의 상”’이다. 그런데 누가 왜 이 동상의 이름을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라고 번역을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새해 한국의 연예관련 뉴스중 현재 군 복무중인 가수 비와 한 여배우와의 연애 사건이 화제였다. 그런데 불똥은 그 자체를 비껴 다른 곳으로 튀었다 즉 비가 규정이상으로 외출과 외박을 했다는 인터넷 고발로 비난에 휩싸이며 군내부의 조사까지 받고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인터넷 기사의 제목은 사람들을 혼란케 했다 제목은 ‘비의 탈모’ 였다. 내용인즉 비가 서울 시내를 걸으며 규정을 어기고 군모를 쓰지 않았다는 또 다른 고발이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네티즌들은 탈모가 모자를 벗다 라는 뜻이라는 것을 기사를 읽기 시작한 후에야 알았다 제목으로만은 비의 머리 빠짐 증세인가로 착각했다. 이상의 혼란이 일어난 배경은 여신과 탈모라는 단어가 두 개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어가 둘 이상의 뜻을 갖는 경우는 어느 언어에도 있다 이들 단어들을 학문적으로 homonym이라고 한다. 이러한 단어는 문장 속에서 그 의미를 달리하기 때문에 문장을 잘 이해하면 구분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 계속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여신과 탈모는 그 좋은 예이다. 이와 유사한 사고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모든 언어는 고유의 언어 외에 외래어가 있으며 또 영향을 받는다 한국어는 고대로부터 많은 단어가 중국어에 영향을 받았다. 중국어에서 유래한 여신이나 탈모라는 단어를 한자로 쓰면 혼란이 일어날 수 없지만 한글로만 사용하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한자의 폐기와 사용의 논쟁을 했지만 폐기결정이후 현재 일반인들은 한자를 잘 모른다. 한자병기를 주장했던 학자들은 이러한 혼란을 경고했었고 이러한 혼란을 피하는 방법으로 모든 중국어로부터 유래한 단어들을 완전한 한국어로 풀어쓰자는 주장을 한 학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이화여자대학교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말을 순수한국어로 바꾸면 ‘배꽃큰계집애배움터’였다. 또 다른 적응이 필요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했으면 여신과 탈모 같은 혼란은 없었다. 그러나 글자는 그래도 두고 한자만 폐지한 조치는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한자교육의 주장은 그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 인터넷 댓글에서 보듯이 공론화가 일어난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향민(영어음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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