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중물˙불쏘시개˙카드˙스포츠

2013-01-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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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언어에 생명이 있는가. 이 답은 있다와 없다의 두 가지일 수 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다.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며, 병들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어에 이런 변화가 있는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현재 사용되는 언어들은 건강을 과시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말과 글로 느낌, 생각이 막히지 않고 잘 통하게 한다. 한마디로 소통은 언어가 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러다가 때때로 병이 날 수 있지 않겠나. 맞다. 언어가 병이 날 때면 서로 알맞은 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오해를 하거나, 마음이 통하지 않게 된다. 언어가 죽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더 이상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 영영 없어져 버리는가. 누군가가 그 말을 찾아서 사용하게 되면 되살아날 수도 있지만 드문 일이다.


이런 말들의 뜻을 알까. ‘마중물과 불쏘시개’ 필자가 어렸을 때는 흔히 사용되던 말이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어디에나 수도가 있지 않았다. 수도 대신 우물과 펌프가 있었다. 펌프는 양수기를 말한다. 지금의 수도처럼 마당에 있는 펌프로 물을 퍼 올렸다. 그런데 이 펌프는 처음부터 물이 올라오는 게 아니고, 꼭 마중물을 부어야만 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말이 자취를 감췄다. 필요가 없어서 죽어버린 것이다.

또 ‘불쏘시개’라는 말이 있었다. 장작이나 숯불을 피울 때 불을 옮겨 붙이기 위하여 먼저 쓰는 잎나무나 관솔 따위를 말한다. 불을 피울 때 첫 단계로 쉽게 불이 붙는 것을 사용하였다. 전기나 개스 사용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서 그 말이 사라진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없어진 말이 많다. 이런 말들을 모으면 역사공부의 자료가 된다.

그러면 말의 수효가 점점 줄어드는가. 그렇지 않다. 죽는 말이 있다면 새로 태어나는 말들이 많다. 요즈음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들은 대부분 새로운 말들이다. 도와주는 사람을 말하는 ‘도우미’, 신체장애자를 말하는 ‘장애우’, 이북에서 남쪽으로 거주지를 옮긴 ‘새터민’같은 말들은 새로 태어났다. 그러니까 점점 자취를 감추는 말과, 처음 만나게 되는 말들이 생긴다. 이런 현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생활양식의 변화가 그 원인이다.

카드, 밀크, 토큰, 인스턴트, 프로그램 같은 말들이 한국 시민권을 받은 외래어가 되어 있다. 한국 내외의 사회를 보면서 단일민족이란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오직 한국내 뿐이 아니고, 세계적인 현황이다. 첫째는 교통이 편리해졌고, 제한적인 민족을 확대해서 세계인, 나아가서 인류로 보는 경향이 모두 뒤섞이는 문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경향을 인류의 생각하는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보고 싶다.

사람의 일생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좋은 생애를 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언어의 일생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면 사용할 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말하는 시기, 태도, 어휘의 선택, 표현의 강약, 소통 정도 확인 등을 생각하게 된다. 또다른 마음과 생각의 표현 방법인 글은 더 무거운 책임을 가지게 된다. 말은 순간적이지만 글은 영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감사한다. 사람에게 말이나 글로 의사표시가 가능하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가끔 바벨탑 이야기를 생각한다. 하늘까지 닿으려는 오만한 인간이 언어의 장벽으로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였다. 언어는 무엇보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언어는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렇게나 다룰 수 없음도 알게 된다.

인간처럼 생명이 있는 언어는 사랑을 바탕으로 귀하게 다루며, 때나 장소, 시기에 맞는 말이 아니면 제 값을 할 수 없음도 기억할 일이다. 언어는 가까운 친구지만 예의를 갖추고 맞이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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