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타인에게‘관대’한 비난

2013-01-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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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경제팀 기자)

요즘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면 벽 쪽으로 물러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해 12월3일 정신병력이 있는 한 흑인에게 떠밀려 목숨을 잃은 한인 한기석씨 사건, 같은 달 27일 특정 인종을 혐오한 한 히스패닉계 여성이 인도계 남성을 선로로 떠밀어 죽게 한 사건 등 연이은 지하철 추락사로 지하철역이 졸지에 공포의 공간으로 변했다.

특히 달려오는 전동차 앞 승강장에 매달린 한기석씨 사진이 뉴욕포스트 1면에 실리면서 언론들과 시민들은 “사진을 찍기 전에 사람부터 구해야 했다”며 사진 기자에 분노했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목격자들을 비난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가 철로에 떨어진 후 사고가 나기까지 22초간의 시간이 있었고 역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나 역시 영화가 아닌 실제 사고가 나기 전 희생자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것을 보고 몸이 떨릴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만약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선뜻 나서서 한씨를 구할 수 있었을까?”라고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만약 내가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무서워서 자리를 뜨거나 멍하게 서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홀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양심적인 도덕심’과 ‘실제 행동’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 뉴욕타임스의 한 사설이 눈길을 끌었다. ‘영웅이 되기는 힘들다(It’s Hard to Be a Hero)’는 제하의 칼럼에서 한씨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 승강장에 사람들이 많았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시민들의 의협심이 부족했다기 보다는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에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방관자 효과’란 범죄 현장에 목격자가 많을수록 피해자를 돕는 사람은 적어지는 행동원리를 이르는 말이다. 즉 사고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돕겠지”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다. 칼럼은 한씨의 사건과 대비해 2007년 50대의 공사장 노동자 웨슬리 오트리씨가 지하철 선로에 추락한 사람을 구해 영웅으로 떠오른 사건을 소개했다. 사고 당시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오트리씨가 선로로 뛰어들어 쓰러진 남성을 선로 중간으로 옮겨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번 한씨 경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서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고 나보다 더 힘센 사람이 있고 누군가 영웅적인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 결과 아무도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도덕적으로 알고 있는 이상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이들을 쉽게 비난한다. 한씨를 돕지 않은 목격자들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그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했었을까? 과연 위험을 무릅쓰고 웨트리씨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가가 되었을까 아니면 방관자가 되었을 까 우리 자신에게 냉정하게 질문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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