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 새롭게 되소서!

2013-0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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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 박재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새해인가 했는데 어느새 또 새해이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듯한 시간은 미처, 길 떠날 차비를 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흐른다. 오라고 재촉한 적도 가라고 등 떠민 적도 없는데 시간은 그리도 바삐 흐른다.

그래서일까. 학명선사(1929몰)는 ‘세월’을 시제로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나/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살지’라고 읊은 한글 선시를 남겼다.


자연적인 시간은 ‘치맛살’처럼 일정하고 엄격한 속도와 진폭으로 한 뼘 한 뼘 세상을 주름잡으며 흘러갈 뿐이다. 사람들은 무심하고 매정하게 흐르는 그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그렇게 그냥 흘러갈 뿐인 시간을 굳이 묵은해니 새해니 하면서 애써 구별하고 싶지 않다는, 조금은 무디고 메마른 ‘선사스런’ 선사의 초연한 심사를 엿볼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로 그리고 묵은해다, 새해다 삶의 편의와 단속을 위해 그 시간의 흐름에 금 그어놓거나, 자신의 마음의 상태와 느낌에 따라 ‘어느새’니 ‘아직’이니, 아니면 짧다느니, 빠르다느니 하는 부사나 형용사를 붙여 시간을 재단하고는 한다.

그러한 마음에 따른 시간을 시인인 헨리 반 다이크(미국·1933몰)는 ‘시간은’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노래했다.

“시간은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빠르다/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짧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렇지가 않지”

더욱이 소설가 이외수는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아불류시불류’라는 제목을 붙인 그의 어록에서 ‘그대가 그대의 시간이다‘라고까지 단언한 바 있다.

그 흐름이 뜻하는 바는 물론 나의 내면의 변화일터. 내가 흐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결국 변화는 나의 몫이기에 내가 시간의 주체임을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불교적 시간의 적극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무상’이란 용어는 조건에 의해 형성된 인간정신과 물질의 세계, 그 모두를 아우른 세계의 본질은 바로 변화임을 천명한 것이다.


아무튼 인간의 현실적 삶을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다만 초연히 흐를 뿐인 자연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토대로 사람에 의해 금 그어진 시간과 사람의 마음에 따른 시간이 함께 버무려져 흐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의 원형은 변화다. 변화는 역동적 흐름이다. 해서 시간을 흐른다고 표현하는 것일 게다.

언제나 흐르는 시간의 반은 이미 없는 과거이며 나머지 반은 아직 없는 미래이다. 그 흐름 속의 통과 접점을 ‘빛나는’ 현재라고 하자. 그 현재를 빛나게 하는 것은 끝없는 변화이다.

불교적 변화의 시발은 ‘내가 나보다 낮아지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보다 내가 낮아지면 세상사 문제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미 빛나는 현재를 사는 성자다.

그러나 한사코 변화를 거부하면, 나는 언제나 지금의 나일뿐이고 새해는 언제나 묵은해일 뿐이다. 새해란 바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이므로 ‘새롭게 되는’ 해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 학명선사에게 소오엔(일본·1919몰) 선사는 이런 내용이 담긴 연하장을 보낸다.

“나는 이제 묵은해를 보내지만 그대는 새해를 맞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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