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동 한 그릇

2013-0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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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갑자기 추워지는 겨울날이면 여기저기서 한파와 배고픔에 떨고 있는 홈레스들과 영세민의 가슴앓이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금년에도 예년처럼 각 교회나 사회단체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의식주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는 모습이어서 다행한 일이다.

매년 추위가 오면 수년전 감동 깊게 읽었던 일본 작가 쿠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단편의 문자들이 함초롬히 떠오른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일본 국회에서 읽혀져 국회는 물론 일본 열도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일본 사람들은 섣달 그믐날 가족과 함께 우동을 먹는 관습이 있다. 우동 집 “북해정”은 그해 섣달 그믐날의 우동을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로 하루 종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제 종업원들도 다 퇴근하고 문 닫을 10시가 되었을 때였다. 남루한 옷을 입은 가냘픈 한 중년 부인이 초등학생 쯤 되는 두 아들을 데리고 머뭇머뭇 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부인이 말했다. “저어,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될까요?”
안주인은 의아했다. “아이들까지 세 사람인데 우동 한 그릇이라니…” 그러나 그 순간 문 닫을 시간에 찾아 온 이들을 민망하게 하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짐짓 명랑한 소리로 주방에 있는 남편을 향하여 “오늘 마지막 손님입니다. 우동 한 그릇 잘 말아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한 그릇 주문 받았지만 넉넉히 3인분을 넣읍시다.” “그래요. 사연이 있는 분 같아요.”
안주인은 우동을 다 비우고 나가는 가난한 세 식구를 문 앞까지 따라 나가면서 “우리 집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내년 그믐날에도 꼭 다시 오세요.”라고 따뜻한 말로 전송해 주었다. 다음해 세 모자(母子)가 또 찾아왔다. 그리고 똑같이 우동 한 그릇을 시켰고, 이번에도 주인은 작년처럼 넉넉하게 세 그릇의 우동을 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그믐날에 한 번 더 찾아와 우동을 먹고 나간 후로는 그 들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그믐날 또 건장한 청년 둘이 나이든 아주머니를 데리고 들어왔다. 안주인은 그 순간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오래전 우동 한 그릇을 시켜먹던 바로 그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나머지 그들 앞에 마주 앉아 그 간의 안부를 묻는 안주인을 향하여 의사가 된 맏아들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우리는 외롭고 가난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고, 이 세상에는 우리 가족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북해정 우동 집 아주머니도 우리를 외면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보잘 것 없는 우리 가족에게 매우 친절했습니다. 그 친절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 다음에 북해정 우동 집 아주머니처럼 외롭고 힘든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 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더 아픔을 체감하는 새해다. 당신은 리더인가. 북해정 주인처럼 찾아온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푸는 “섬세함의 거인”이 되라. 특히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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