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새해는 ‘자기반성’부터

2013-01-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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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사회부 기자의 아침은 뉴욕시경(NYPD) 공보실(DCPI)이 보내온 밤사이 사건사고 리포트를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2013년의 첫 출근을 앞둔 날에도 잠에서 깨자마자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이 NYPD 리포트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했다.

이 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또 사안이 중대하지 않은 한 남성의 체포 소식을 접하게 됐다. 체포사유는 음주운전. 음주운전은 분명 범법행위에 속하지만, 운전자의 실명까지 적어 굳이 기자들에게 리포트를 보내기에는 뉴스가치가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다. 더욱이 NYPD는 살인과 강도, 대형 교통사고가 아닌 이상 웬만해선 굳이 보도자료 형식의 이런 리포트를 작성해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이례적이라고 느낄만하다.


하지만 NYPD 공보실이 이 남성의 체포소식과 신원을 공개한데에는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기자들이 따진다는 그 뉴스가치라는 것보단 음주운전자가 누구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공개’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번에 체포된 사람은 NYPD 소속의 현직 경찰. 결국 NYPD는 제 식구를 제 손으로 고발했던 것이다. 이는 ‘자기반성’과도 같았다.

한 때 세계최대의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누렸던 포드(Ford)사가 몰려오는 수입자동차들에 밀려 존폐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모두가 자포자기한 어느 날 중역들을 중심으로 한 ‘최후의 회의’가 열렸는데 포드사의 성장을 초창기 때부터 지켜본 한 노임원이 갑자기 ‘자기반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상류층만이 보유할 수 있던 마차를 대체할 대중적인 교통수단, 즉 자가용을 만들자는 게 포드의 첫 시작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소비자를 위한 자동차가 아닌, 우리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한 회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반성한다.”
이후 이곳저곳에서 자기반성식 고백이 터져 나왔고, 포드가 다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냈다.

음주운전 경찰관의 ‘신원공개’는 해당 경찰관에게도 분명 불명예를 안기겠지만, 그가 소속된 NYPD에게도 부끄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NYPD가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반성’을 택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포드의 사례에서 보듯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기반성’은 ‘신뢰’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2013년 새해가 밝았다. 혹시라도 우리 삶 속에도 ‘반성’ 할 일이 있다면 또다시 한해를 묵히지 말고 ‘자기반성’식 성찰과 고백을 통해 모두 씻고 가는 건 어떨까. 모두가 공평하게 부여받은 ‘새해’를 핑계 삼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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