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이 그리운 세상

2013-01-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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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인의 신앙

▶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새로운 한 해가 또다시 시작됐다. ‘지혜로움’의 상징인 ‘계사년’ 뱀의 해가 문을 연 것이다.

분명 하루의 시작이 동트는 새벽의 여명으로 열리듯이 한 해의 시작은 정초의 맑은 정신으로 시작된다. 시간으로야 일 년 365일이 똑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한 해가 막 시작된 신년 정초의 하루하루는 유달리 새로워서 좋다.

싱그러운 느낌과 함께 이른 아침 동녘 하늘에 떠오르는 햇살처럼 맑고 밝음 때문이리라. 저절로 기지개가 펴지면서 깊은 심호흡과 함께 마음과 정신이 마냥 새로워진다. 사시사철 봄날 같은 캘리포니아 기후로 이제는 추억으로만 만나는 고국의 눈부신 새해 아침의 맑고 시린 아침 공기가 추억의 그리움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 가운데서도 겨울의 정취하면 뭐니 뭐니 해도 흰 눈이다. 떨어진 낙엽 위에도, 마른 가지에도 쌓여 있는 눈송이가 제 무게에 못 이겨 스르르 쏟아져 산자락을 감고 도는 논두렁 위에도 흰 눈이 입은 채 정적에 잠겨 있던 시골 고향이 그립다.

그런가하면 눈이 하얗게 내린 새벽 뜰에 던져진 비닐봉지에 담긴 조간신문을 집어 들고 급히 안방에 들어오면 언제나 느낄 수 있었던 그 밝고 따스한 분위기가 참으로 포근하고 좋았다.

자연과 함께 살았던 이같은 인간 삶이 이제 태고적 이야기가 되어 버린 21세기 현대인의 문명 안에는 그래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꿈’이 그리운 세상이다.

오늘날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 삶의 구조는 돈과 물질과 기술문명으로 아름다운 인성이 숨 막히도록 짓눌려버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보이던 것이 맑은 하늘과 산, 꽃과 나비, 뭉게구름과 넓은 산천이었던 인간의 마음 안으로 이제는 TV와 컴퓨터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것이 온통 조그만 활자들뿐이다. 창조우의 작품인 ‘자연’ 대신 인간의 작품인 컴퓨터 안에서 살게 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색할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느릿느릿 흐르는 뭉개구름과 먼 산을 바라다보면서 인생과 앞날에 대한 ‘꿈’을 꾸며 살던 인간이 순간순간 바뀌는 화면을 바라다보느라고 이제 더 이상 사색할 틈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사색할 틈이 없으니 자연 꿈꾸는 것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세상인가?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삶은 가난해도 마음만은 항상 뭉게구름 같은 꿈 때문에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걸어 다니는 대신,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타고 다니는데도 현대의 삶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불안하기만 하다.


물질은 풍족해졌는데도 마음은 오히려 여유를 잃어버렸으니 정작 진짜 베기는 놓쳐버린 셈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아브람아.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사방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사방 저 멀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보였다.
모든 희망과 소원도 먼저 바라보는 것으로 생겨난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로 그들이 눈을 들러 앞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인생의 꿈을 꾸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꿈을 꾸면 목적지가 드러나 보이고, 목적지가 보이면 그곳을 향하여 인생길이 결정된다. 방향만 정해지면 언젠가는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다가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지만, 중단만 하지 않으면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 성공하게 돼 있다.

꿈을 꾸어야 삶이 달라진다. 꿈을 꾸어야 좋은 것이 보인다는 말이다. 고개를 들고 기껏해야 100년 밖에 살 수 없는 지상 삶을 넘어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늘나라를 바라다보면 분명코 좋으신 ‘하느님’이 보인다. 그 때문에 새로 맞이한 한해가 모든 이들에게 하늘나라를 꿈꾸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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