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하기의 어려움

2012-12-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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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송순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우리나라에는 “말은 해야 하고 고기는 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언어가 자기표현의 수단임으로 타인에게 자기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속뜻을 풀어 말을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고기를 씹어 맛을 음미하듯이 말을 섬세히 해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한다는 비교법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은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수단이고, 자기표현의 길이고, 타인을 설득하여 이해시키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이 자기표현의 수단이라고 해서 마구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속담이 훨씬 많습니다. “말 단 집에 장 단 법이 없다”고 해서 말이 많은, 혹은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뜻을 일러줍니다. 나아가서 말의 허구성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말로는 사촌의 기와집도 지어준다”거나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이 이어집니다. 또 “말은 속여도 눈길은 속이지 못한다” “말이란 어 해 다르고, 아 해 다르다” “말은 하고 나면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다시 담을 수가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말이 자기표현의 수단이라고 해서 너무 자주, 혹은 너무 함부로 사용하면 ‘설득’이 아닌 ‘오해’를 불러 오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만, 금년 한국의 대통령 선거 TV 후보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 이정희씨의 발언은 후보토론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였습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이라면 거기에 걸 맞는 말의 수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정희씨는 후보들의 정책토론회를 마치 재래시장 난전의 가격 시비 수준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하여 나왔다”에 이어 “나는 야권단일화로 정권교체를 위하여 후보를 사퇴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 문제의 역사적 사실조차 왜곡하는 박근혜씨는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 등의 원색적인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 놓았습니다.


말이란 어법에 맞는 발성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음성의 높낮이와 그에 따른 얼굴 표정, 말의 속도 등이 말의 진정성을 함께 표현해 줍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신분과 경우에 따라 거기에 맞는 수준의 어휘 선택과 품위를 갖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타당한 말이라도 그 얼굴에 헛웃음을 띄우고, 어조가 경박하며, 논리가 작위적일 때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됩니다.

이정희씨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리 싸움판 진보계열의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저 사람이 어떻게 한 정당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국민을 우습게보아도 그렇지, 한 국가의 선거가 장난이 아니라면 어떻게 상대후보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등록을 했다고 거침없이 말 할 수 있는지, 시청자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정희씨가 박근혜씨를 대통령에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발언도 선거관리 위원회가 후보로 받아들인 상대를 국민이 선택도 하기 전에 토론회에 나와서 혼자서 일도양단하여 평가하는 경솔한 말이었습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토론회에서 좀 어눌한 말솜씨로 명쾌한 답변을 못하였지만 박근혜씨는 상대적으로 신중하고 진정성이 엿보였고, 결국 여성으로서 한국의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것도 국민들이 투표자 과반수를 넘는 지지율로 대통령으로 밀어 주었으니 이정희씨의 평가는 무색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 그것은 때와 장소를 고려하고 자기 현실에 맞게 신중한 표현으로 할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평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같지 않은 말” “말 단 집에 장 단 법이 없다”는 속담같이 역효과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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