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기 예수님이 오고 계십니다

2012-12-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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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마리아는 무서웠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면...? 조롱과 오해와 멸시를 받고 이웃으로부터 소외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 속에 그 고독 속에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등 돌려 누운 부부에게도, 닻을 잃고 방황하는 틴에이저에게도, 돈벌이에 바쁜 부모에게도 소외된 어린 것들에게도 가슴 설레는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목동들은 차가운 들에서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벌이도 시원찮고 더 나은 일거리도 없는 품팔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피곤한 눈동자에 그 가난 속에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열 두 시간 싸우는 채소가게에, 먼지 속에 재봉틀 밟는 아낙네에게, 새벽부터 비늘 벗기는 생선가게에, 스스로 빨래처럼 늘어진 세탁소에, 불황으로 한산한 점포에도 희망의 소식 담고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천군천사의 코러스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평화를 알리는 기쁜 소식(복음)이었습니다. 형제끼리 총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비무장지대에도 크리스마스는 오고 있습니다.

날마다 포화에 죽어가는 시리아의 주민들에게도, 총기 난사로 역문도 모르고 죽어간 커네티컷 유치원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오고 있습니다. 인종의 차별과 분노가 울렁이는 거리에도, 홈레스 피플이 새우잠을 자는 지하철에도, 고향 그리며 아파트에 갇혀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따뜻한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음 크리스마스는 누추한 마굿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관들은 만삭의 임산부를 거리로 내몰았고 한데서 태어난 아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폭군의 위협을 받고 피난길을 떠나야 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외롭게 지냈습니다. 예쁜 아내도 없고 남들처럼 자식 자랑도 못해 보았으며 고향에서는 푸대접 받고 제자들은 도망치고 권력층과 상류사회의 미움을 계속 받다가 젊고 젊은 나이에 무거운 십자가 형틀을 메고 골고다 언덕을 혼자 올라갔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예수의 탄생은 무척이나 고요한 중에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처음 크리스마스를 축하한 것은 몇몇 목동들과 ‘동방박사’라고 불리는 소수의 외국인들이었습니다. 박수도 갈채도 환성도 샴페인도 터지지 않고 짐승들의 낮은 울음소리만 고요 속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대목으로만 아는 상가와 한 달 전부터 징글벨을 울려대는 백화점과 술과 춤과 화려한 의상으로 범벅을 이루는 연말 파티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예수의 탄생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아기 예수가 누웠던 소박한 구유가 되면 어떨까요. 예수님이 품었던 용서를 내 구유에 가득 채워 묵은해의 질투와 오해와 분노를 말끔히 씻고 한 번 더 용서하고 다시 한 번 사랑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짐승의 밥통에서 시작한 성자를 생각하며 고생의 쓴 잔을 달게 받고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기쁘게 감수하고 땀과 눈물을 진주로 바꾸는 의욕을 가집시다. 채워지는 것을 나의 성취로 착각하지 말고, 은행 잔고로 나의 성공을 오판하지 말며, 나의 저축은 이웃의 마음속에 나의 유산은 인류의 가슴 속에 남기면 어떻겠습니까.

창녀와 매국노와 죄인들을 친구로 삼았던 예수, 문둥병자와 심신장애자와 어울렸던 성자, 아이들을 좋아하고 노동자들로 제자를 구성했던 메시아, 그런 분이 오신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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