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향(歸鄕)

2012-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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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늘의 구름도 떠돌다 비가 되어 내려서는 바다로 다시 돌아가고 바람도 불다가 제자리로 조용히 돌아간다. 하늘을 아는 자에게는 신이 보이고 땅이 보이는 자에게는 돌아 갈 곳이 보인다. 육신이 흙으로부터 왔으니 죽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이 하늘로부터 왔으니 죽어서 하늘로 되돌아간다. 살아있는 동안 그리움이 있는 자에게는 돌아 갈 곳이 보인다.

고향이고 본향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귀심(歸心)이라고 예부터 말을 하는데 본향이야 살아있는 한 마음대로 돌아 갈 수 없지만 돌아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곳이 또한 고향이다. 삶과 생계 때문에 육신이 매여있기 때문이다.


진나라 때의 도연명(365-427)은 생계 때문에 관직생활을 하다가 작은 일 한 사건을 빌미로 귀향을 하게 된다. “내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아무리 중앙 관청에서 나왔다 한들 하급 관리에게 허리를 굽혀 맞이하겠느냐” 관직을 동댕이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세상에 남긴다.

나, 돌아가리라.
내 집과 뜰과 전원에 잡초가 무성하리라.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내 육신의 종이 되었거니,
어찌 홀로 슬퍼만 하리오?
지난일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앞으로 닥칠 일을 염려 할지어다
길을 잘 못 든 지 얼마 되지 않았도다.
비록 어제까지의 일은 잘못 되었어도
오늘은 올바로 깨달았노라
(하략)

하와이 사탕수수 밭 농장으로 노동을 팔러 왔던 이조 말의 한국인들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자 아무리 생활 기반이 튼튼히 잡혀 있더라도 목메게 원하던 간절함은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에 묻히는 것이었다. 타향살이 모습은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출세를 한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다. 그리움에 핼쓱 해 진 얼굴들, 그걸 깨닫는 사람이 미국에서도 점점 늘어 간다.

내 사돈댁은 비교적 걱정 할 것이 없는 집안이다. 사돈댁 내외가 의사로서 봉직 하다가 은퇴를 했고, 그 아들 셋이 모두 의사요 며느리가 의사요, 약사요 변호사니 한국인 이민자들 가운데에서는 비교적 걱정 할 것 없는 가정이다. 은퇴 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기도 했지만 한번 갔다 와서는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근래에 한국에 다녀와서는 한국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계획을 짜는 모양이다.사회적 환경도 좋아졌기 때문이겠지만 고향 땅이라 낯설지 않고 어디를 가나 긴장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향 땅이란 다 그런 것이고 고향 사람들이란 다 그런 것이다.

80년대에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미국으로 다시 돌아 와 사는데 2,000년도로부터 해마다 늘고 있는 영구귀국 가정들은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처진 어깨로 묵묵히 가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그 길, 어찌 고향 가는 길 뿐이랴! 인생살이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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