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표현의 자유와 죽지않을 권리

2012-12-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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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미국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와 제2조 무기소지의 자유가 최근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월달에는 ‘표현의 자유’가 족쇄가 되어 죄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Mahomet)를 아동 성추행범과 호색한으로 묘사한 미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 축약본이 유튜브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슬람권 20여개국에서 반미시위와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이슬람 비하영화에 대한 시위로 도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9월 11일에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계획된 테러를 자행, 리비아 주재 크리스 스티븐스 미 대사를 포함, 외교관 4명이 살해됐다. 이 판국에 프랑스의 잡지 ‘샤를리엡도’가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했다. 유대교 랍비가 휠체어를 탄 마호메트를 밀고가고 터번만 두른 나체의 마호메트를 그린 것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자국 외교시설 공격에 대비해 20개 국가 주재 대사관의 문을 닫기도 했다.


아마추어가 만든 이 황당한 영화의 무책임한 언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 지 모른다.
지난 14일 커네티컷 뉴타운 초등학교에 총을 든 정신질환자가 침입하여 교직원과 킨더가든 학생부터 초등학교 4학년 학생 27명을 무참히 죽였다. 이 참혹한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과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미총기협회의 의회 로비건물 앞에서 시위를 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새해의회 출범 직후 총기규제법안을 추진할 방침이라 한다.

수정헌법에 규정된 무기 소지권리로 인해 미 국민은 18~21세가 되면 합법적 취득이 허용된다. 주마다 관련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이 제한이 없는 30개주에서는 초등학생이 총기를 보유해도 법률적인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총기로 인한 사고가 수시로 발생하여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지옥에서 살아남은 자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혼자 가정집 지하실에서 이슬람권 또는 미국을 풍자, 조롱하는 비디오를 보면서 홀짝홀짝 와인을 마시든, 소주를 마시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인데.

그런데 시초부터 불순한 의도를 갖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동영상이라면, 그래서 유튜브나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가 보게 되면 엄청난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총도 그렇다. 매일 거대한 총신을 끌어안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고 기름으로 윤을 내가며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면 누가 뭐라나. 그런데 일단 총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진짜 총알이 나가는 지 쏘아보고 싶은 유혹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선량한 시민들의 ‘죽지 않을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어서 운이 없어 총에 맞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자유의 땅 미국에서 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대형샤핑몰이나 극장에서 총에 맞을까 불안해해야 하는가.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고 국민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권, 존엄권이 보장받아야 한다.

미국에 처음 이민 와서 이런 주의사항을 들었을 것이다. 교통법규에 걸려 경찰이 세우면 절대로 주머니 안에 손을 넣지 마라, 서라고 하면 무조건 두 손을 위로 높이 치켜세워라, 이는 혹시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는 오해를 받아 억울하게 총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것이 총기보유의 자유와 제한에 관한 발언이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총기협회는 1,000만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정부는 아무리 그들과의 싸움이 치열해진다 하더라도 시민의 ‘죽지않을 권리’인 생명권을 지켜주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하여 다른 나라 문화를 야만, 악마로 조롱하는 것은 표현의 악용이자 편견과 아집일 뿐이다. 또 헌법에 명시된 총기소지 자유는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라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 총기 소지의 자유, 그 자유의 한계가 어디인지, 그 라인을 정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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