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총기규제만으론 부족하다

2012-12-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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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5년전 버지니아 공대에서 무차별적인 총기난사로 33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간 당시 사건은 전 미국을 공포로 흔들었다. 그 이후에도 지난 7월 콜로라도주 덴버 근처 오로라시 한 극장에서 괴한이 관객들을 향해 최루탄을 던진 뒤 무차별 총격을 가해 국민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이번에 또 미 역사상 두번째의 대형 학교총기참사가 커네티컷주 뉴타운에서 발생해 전 미국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 LA샤핑몰에서도 50여발의 총기 난동, 오클라호마 플로리다 학교내에서 학살극 모의, 인디애나에서 이번 사건의 모방범죄까지 발생해 미전역이 온통 총기 난사 공포에 떨고 있는 분위기다. 뉴잉글랜드라고도 불리우는 이번 참사의 현장 뉴타운은 명문학교와 교육의 중심지로 흔히 알려져 있는 곳이기에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 부모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미국의 한인사회나 한국에서 커네티컷이나 매사추세츠주내의 사립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가정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미국에 총격사건이 다반사라 하여도, 어린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특히 백인들이 다수인 지역에서 무슨 총격사건이냐 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물론, 이번 사건도 한 정신이상자의 돌발적이고 단발적인 사건으로 단순하게 해석하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구상 그 어느 곳도 안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기가 총이냐 칼이냐의 차이일 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악한 마음을 품고 달려드는 사람은 때와 장소를 불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의 범인은 다름아닌 그 학교 교사의 아들로 사건당일 먼저 어머니를 죽이고 교사와 어린이 등 27명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갔다. 이제 많은 미국인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다시 미국 헌법에서 보장된 총기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공감대의 발로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반드시 총기규제 법안을 강화해 총기 남용으로 인해 생기는 대형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이번 사건의 범인은 학교에서 왕따, 부모이혼 가정에서 인격장애를 앓으면서 외톨이로 지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미국사회와 가정, 학교에서의 전인 교육 부재, 인간성 상실로 인해 파생되는 적개심, 분노 등을 올바로 해소하지 못한 무분별한 돌출행동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 그리고 시험을 통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인성의 함양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른바 현대 지식사회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아가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교육환경에 대해 교육전문가들과 학부모들의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져 있는가? 최소한 이러한 공감대를 위한 끊임없는 열린 토론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가?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모두 물리적인 안전과 경보 시스템에 대한 성토만 하고, 그 이면의 원인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타성에 젖어버린 미국 교육시스템을 인성중심의 교육으로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점수 중심이 아닌, 인성중심의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교육이 어느 때보다도 미국인들에게 절실해 보인다.

이런 결과를 보면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미국에 자녀를 백인 지역, 혹은 좋은 학교에 유학만 시키면 마치 아이들이 자동판매기에서 쉽게 성공적인 인간으로 완성되어 나온다고 믿는 안일한 사고방식에도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하면 비약일까? 이 사건을 통해 미국내 총기규제라는 거대한 담론도 중요하지만 모든 가정과 직결된 자녀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먼저 되짚어 보는 중요한 반면교사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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