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레미제라블

2012-12-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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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경제팀 차장대우)

지난 10일 텍사스 휴스턴의 한 월마트 매장 주차장에서 20대 여성이 물건을 훔친 것으로 의심,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다. 일부 제품을 계산하지 않고 옷 속에 숨겨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지난 달 25일 조지아 리토니아에서는 중년 남성이 DVD 플레이어 2대를 훔치다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그 남성은 훔친 물건을 갖고 리토니아 월마트 매장에서 나가려다가 직원들에게 적발돼 제지당했다. 그러나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직원들과 보안요원이 남자를 깔고 앉아 목을 조르고 있었다.


현대판 레미제라블이다. 장발장은 빵을 훔쳤다고 19년을 복역하는데 그쳤으니, 그나마 최근 죽은 이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는 게 어려워선지 절도 사건도 늘고 있다. 연방법무부는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절도사건 발생률이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산하 사법통계국(BJS)의 연간 범죄피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1년 절도 사건은 1,280만건으로 전년 1,160만건보다 10% 늘었다.

도덕 불감증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각박하다. 있는 사람은 갈수록 재산이 불어나고 없는 사람은 더욱 괴롭다. 실업률은 높고 사람들의 인심도 야박해졌다. 가난보다 더 힘든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다. 빈부 격차는 좁아지기는 커녕 넓어져만 간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반대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인본주의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연구한 박영호 전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이 아닌 물질이 중심이 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나마 그 병폐가 완화된 것은 민주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화론을 바탕으로 한 인본주의에서 자본주의는 탄생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돈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200달러 남짓한 돈에 사람이 죽고, 내 명예와 돈이라면 죽어가는 사람도 외면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다. 온누리에 사랑을 전하는 날이다. 주위의 이웃들을 돌아보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한해를 정리하길 바란다. 주어진 시스템에 길들여져 눈과 생각이 멀고 마음까지 차가워졌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왔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마음이 가난한 자가 진정한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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