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절제의 미덕

2012-12-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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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절제’라는 말은 원래 군사용어로 쓰였다. ‘경비하다’ ‘파수하다’ ‘지키다’ 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언어, 생각, 행동을 경비하고 절제하는 데 실패한 사람은 모든 일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1941년 12월7일 일본 전투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무너진 진주만 사건. 그날은 곳곳에서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견습 사병 몇 명만이 레이더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갑자기 레이더망에 이상한 물체가 포착되어 상부에 보고했지만 그 자리에서 무시되었다. 하와이의 미태평양 사령부는 이렇게 사소한 경비의 실패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남긴 우화 중 ‘철새’라는 것이 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다가오자 철새 오리들이 남쪽으로 날아가기 위해 떼를 지어 먼 여행길을 나섰다. 한참 날아가다 좀 쉬어 가기로 했는데 마침 눈앞에 누렇게 잘 익은 콩밭이 보였다. 오리들은 ”굶주린 배를 채우고 하루만 쉬었다 가자.“ 하며 콩밭에 내려앉았다.

이튿날 아침 오리들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오른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했다. 그런데 한 오리만 “하루만 더 쉬었다 가야지.” 하며 주저앉아 몇 날을 더 머물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놀란 오리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으나 날을 수가 없었다. 몸이 비대해지고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오리는 눈보라에 묻혀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 친구 오리들이 찾아왔다. 콩밭에 묻혀 죽어있는 동료를 보고 “조금만 절제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 하며 안타까워했다.
절제를 가장 생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은 포도원 농부들이고 시인들이다. 작년 초겨울에 피스밸리(Peace Valley)포도원에 가 보았다. 참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이 감돌았지만 포도원 농부에게 겨울은 한가한 시간이 아니다.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내느라고 분주하다. 포도나무는 새로 나온 가지에서만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지난여름 내내 자라난 묵은 가지를 많이 잘라낼 수록 그 이듬해에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울의 질투와 분노를 향하여 끊임없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인 엔게디 굴과 십 황무지에서 두 번이상이나 목숨을 살려주는 절제의 미덕을 보신 후 다윗을 축복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위대한 리더로 세워주셨다.

그렇다, 절제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지금은 절제의 미덕은 무시당하고 자유로운 욕망의 분출이 미덕이 되는 자유방임의 시대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끊임없는 가지치기를 통하여 열매의 밀도를 완성하는 포도나무처럼 사는 길 밖에 없다. 당신은 리더인가. 강도(强度)있는 절제를 통하여 밀도(密度)있는 리더로 비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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