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마 아바시와 세키네 시로

2012-1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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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지난 3일 뉴욕 지하철역에서 시비가 붙었던 흑인 남자에 의해 등 떠밀려 사망한 고 한기석씨의 사연은 뉴욕에 사는 한인 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이로 인해 충격 받은 사람은 한인뿐만 아니라 뉴요커에 자부심을 갖고 사는 미국인들에게도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주 대낮에 일어날 수 있었을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아버지와 남편을 불시에 잃어버린 가족들의 마음이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생계를 위해 한인사회가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어찌 그들이 당한 아픔을 치유할 수 있으랴. 이 아픔은 그 가족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민자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픔과 같다.
그런데 더 놀랍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뉴욕 포스트에 커다랗게 실린 한 장의 사진이다. 한기석씨가 전동차에 치이기 직전 찍혀진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사진기의 플래시를 터뜨려 전동차가 멈추기를 바랐다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곳엔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구출을 시도라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번 사고를 보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차갑다. “경고를 보내려고 플래시를 터뜨렸다는 말, 진짜 믿는 사람이 있어?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구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니, 뉴요커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가 치었을 때 사람들은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가 얼마나 슬픈 나라가 되어가고 있는 건지 너무 무감각해지고 있잖아”등등.


하지만 세상은 차갑고 무감각한 사람들만 사는 곳은 아니다. 2001년 1월26일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당시 26세)씨와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씨. 둘은 같이 뛰어내려 취객을 구하려 했으나 함께 죽었다. 이수현씨는 고려대학 재학 중 휴학하고 일본어 공부를 하러 갔다 변을 당했다.

2003년 10월13일 서울 신당역. 선로를 가로질러 반대방향 차를 타러 건너던 한 사람이 전동차와 승강구 사이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 사고를 안 승객들이 모두 내려 전동차를 밀어내는 합심을 보여줬다. 2009년 2월4일 인천 계산역. 한 승객이 선로로 떨어졌다. 전광판엔 전동차가 전 역을 출발해 곧 들어온다는 신호가 켜져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시민 두 사람과 공익근무요원이 선로로 뛰어들어 전동차가 들어오기 전 바로 구해냈다. 2009년 5월11일 국철 부평역. 한 여대생이 선로로 떨어졌다.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파란신호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경호업체 직원 이지완씨와 대학생 주시우씨까 함께 뛰어 내려 여대생을 끌어올렸고 여대생은 죽음을 면했다.

한국인과 외국인 둘이 사람을 구한 적도 있다. 2009년 7월19일 서울지하철 신천역. 만취한 승객이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졌다. 이란 국적의 알시아씨와 윤중수씨가 함께 뛰어 내려 승객을 구해냈다. 2011년 4월22일 부산 지하철 대티역. 한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선로에 떨어졌다. 대학생 신상영씨가 뛰어 내려 할머니를 구출했다.

이 때 젊은친구 신상영씨가 한 말은 한기석씨의 죽음을 보고만 있었던 뉴요커들의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으면 할머니를 구출했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다. 한 사람은 한기석씨의 죽기 전 사진을 찍어 방송을 타는 등 일약 유명인사가 돼 버린 사진작가 우마 아바시(Umar Abbasi).

또 한 사람은 사람을 살리려 선로에 뛰어내렸다가 이수현씨와 함께 목숨을 잃어버린 일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씨. 둘은 같은 직업에서 같은 길을 걷는 사진작가였다. 둘은 위급상황에서 똑같이 사진기를 둘러매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찍어대기에 바빴고 한 사람은 사람생명을 살리기에 바빠 목숨까지 내버렸다.

아이러니다. 뉴요커로 산지 수십 년이다. 부끄럽다. 그러나 만일, 그 자리, 그 시간에 자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뉴요커들, 전동차가 들어오는 앞에선 절대 누구와도 시비 붙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기를 바란다. 22초. 한기석씨를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왜 자꾸 22초가 새겨지는 걸까? 두 사람의 사진작가, 우마 아바시와 세키네 시로. 똑같은 사람이지만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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