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석양과 노을

2012-12-07 (금)
크게 작게
한재홍(목사)

몇일 전 하이티 선교 현장을 다녀오면서 카리브 해의 이름다운 전경에 취해본 적이 있다. 옅은 구름이 군데군데 끼어 있고 푸르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인 그 맑은 바다 위로 태양이 발을 담그려는 순간 가장 큰 모양으로 변하더니 불이 타기 시작했다. 지는 해는 아름답지만 뜨거운 열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리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내 마음속에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노을이다. 태양이 보이지 않는데도 노을은 오후동안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석양보다 노을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은 내일이면 다시 떠오르지만 노을은 환경에 따라서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을 태양이 지는 석양에 비교한다면 우리들이 남기는 일들은 노을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철학을 세워본다. 인생의 삶인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위하여 살았느냐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기에 시간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에 이르자 내 자신이 어딘지 모르게 바르게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 넓은 바닷가에서 숨이 차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찾아왔고 또한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함이 앞섰다.
잔잔한 영상을 깊이 남긴 노을 앞에서 초라함을 찾을 수가 있어 다행하기도 했지만 일찍이 역사의 순간을 알았다면 후회함이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나의 삶은 시간을 중요시하고 시간 앞에서 매달리다시피 쉼 없이 달려 왔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떠나도 그렇게 미련이 남을 것 같지 않은데... 다른 사람에게 좋은 노을을 보이지 못함 때문에 더 깊은 아쉬움이 앞서는지 모르겠다.

남은 생이 나에게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이젠 석양의 태양이기에 멀어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열과 힘이 없지만 노을의 잔영이라도 남기고 싶은 생각에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거시기라고만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다.

부부가 닮아가는 것은 마음과 생각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닮은꼴을 가져서 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지만 비슷하게 닮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나오도록 후회 없는 시간을 엮어 인생의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그래도 한 시대가 지난 후에도 그 사람이 있어서 좋았더라는 그런 사람으로 노을을 남기고 싶어진다.

다음에 다시 카리브바다를 찾을 때 색다른 석양과 노을이 가슴이 담아지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가 보람있고 후회 없는 시간들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덕을 쌓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이는 자신을 위한 바벨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섬기는 바닥이 되어지기 원한다. 그래서 나의 관 앞에 선 사람들이 아까움 없이 한 송이의 꽃을 놓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제부터 자신을 세우기 위한 믿음의 칼을 더욱 열심히 갈아야겠다.

뿐만 아니라 꽃을 든 후배들의 손이 떨리게 하고 싶다. 아쉬워하는 마음을 안고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체나마 돌아보게 하고 싶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기쁨으로 만나고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