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한 인생

2012-12-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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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올해도 다 가고 마지막 한 장 남은 12월달 달력을 쳐다보면서 ‘행복하다’, ‘잘살고 있지’를 주문처럼 외워본다. 지난 11월달 어느 한 주 동안 장례식과 돌잔치, 결혼식을 한꺼번에 다녀와야 했다.

일요일 저녁에 간 장례식은 오랜 투병 끝에 젊은 아내와 초등학생 아이 둘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45세 남자였는데 그는 건강하던 시절, “7년동안 7일간 일해오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하루빨리 이민의 터를 다지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던 그는 병마에 모든 꿈이 스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돌잔치에 갔다. 홀어머니 밑에서 3남매의 장녀 노릇을 톡톡히 하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둘째아이 돌잔치에 일가친척, 친구 모두 불러 잔치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두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베이비 강남 스타일’로 만든 영상을 손님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넘치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보기좋은 지 몰랐다.


그 다음날에는 결혼식에 갔다. 신부쪽 하객으로 갔으니 신부 이야기만 하자. 컬이 풍성한 롱 헤어에 꽃을 꽂고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어찌나 예쁜지 신부 어머니의 마음이 저절로 그려졌다. 배 아파 낳아 정성을 다해 곱게 키워서 출가시키자니 대견하지만 서운하겠다 싶었다. 안그래도 요즘 딸 가진 부모 마음으로 젊은 남자를 보면 제일 먼저 사윗감으로 저런 스타일은 어떤 가 한다.
눈물 나고 슬픈 감정, 기쁘고 즐거운 마음, 대견하나 애틋한 마음, 이렇게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일주일새 겪으면서 ‘인생사, 이게 다인가.’, ‘사는 것 별거 없어, 사는 동안 잘살자, 행복하자’ 싶었다.
주위 사람이나 기자로서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먹고 사는 일이 힘들지만 가장 상처를 받는 것은 사람에게서라고 말했다.
불교 경전(아함경 상은부)을 보면 인도의 어느 왕과 왕비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붓다를 찾아가 그 같은 생각을 털어놓는다. 붓다의 대답이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에 가든지 자기보다 더 귀중한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는 더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가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

켈리야의 요한 교부가 임종하기 직전, 어느 수도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말씀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요한 교부는 말했다. “그대가 구원을 받으려면 이 한가지만 실천하면 충분할 것이오. 그대 이웃을 그대 몸같이 사랑하시오. 그러면 그대의 원수들까지 모두 그대의 발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오.” 성인의 가르침은 알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을 상처주고 자신도 상처받고 산다. 그런데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재능과 가진 것을 홈레스 셸터, 재난구호센터로 찾아가서 나누는 자들이다.

이들처럼 크게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이웃, 친지, 친구에게 이번 연말에는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선사해보자. 선물이라야 일반 소시민이 무리해서까지 장만할 수 없으니 그저 소소한 것을 가져가더라도 열심히 그의 말을 들어주고 큰소리로 웃으면서 하루를 함께 보내보자.“내년에는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이 일어날 것같아.” “뉴욕에 사니 이렇게 멋진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참 좋지?” “이렇게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

이런 여유로운 말과 진심이 깃든 실천은 절망으로 가라앉은 이들을 일어나게 한다. 내가 먼저 밝고 힘차고 씩씩해야 상대방에게도 그 기운이 전달된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주저앉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자.

비록 성인들처럼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지는 못해도 온 마음을 다한 내 작은 정성이 이후 그들의 삶을 행복으로 바뀌게 할 수 있다. 더불어 우리들의 그저그런 삶도 행복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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