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샌디가 지나간 후

2012-11-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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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익(공인장의사)

존재하는 것, 움직이는 모든 것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샌디, 여자 이름인가 본데 어디서 그 괴력이 나왔는지, 처참한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졸지에 1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집과 사업체들을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수일동안 암흑과 추위에 떨게 한 그 정체는 무엇일까?

누구를 탓하랴! 하늘과 땅이 원망스럽다. 왜 하필 보름달까지 가세하여, 만조 때 해수면을 높게 하여 예상치도 못한 바닷물이 육지로 올라와 폭풍과 해일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을까? 마치 북한이 연평도를 타격하듯,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 맞은 듯 얼떨떨하다. 전기가 없어 소통이 안 되니 이웃의 피해도 서로 몰랐다.


전 세계가 지켜보며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당한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뭐가 보여야지, 들려야지, 움직일 수 있어야지, 뭐라고 하소연이라도 하지. 여기가 미국인지 의심스러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발달한 도심에서, 가장 느리고 어둡고 낙후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모두가 멈췄다. 이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 것이지만, 여기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을 잊혀지기 전에 되새겨 보려 한다.

인간의 탐욕은 하늘 끝을 향하고, 어리석음은 땅끝을 향하니, 자연이 침묵을 마다하고 입을 벌리는가. 사람이 입을 벌리면 흔히 두 가지를 한다. 하나는 삼키고, 또 하나는 말한다. 자연은 어떻게 할까? 자연이 삼키는 것은 보았다.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동안 자연이 준 선물, 즉 곡식과 열매, 육축을 폭식하여 소화기관은 과부하다. 그것도 자연식이 아닌 패스트 푸드로 말미암아 우리의 혈관이 막힐 지경이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나서, 살 빼려고 또 뛴다. 뼈마디가 성할 리 없다. 좀 더 빨리 달리려고 에너지를 너무 태우는 바람에 우리의 목이 Chocking이 되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온실의 덮개인 오존층까지 파괴되고 있다. 그 해로운 개스를 구하려고 몇 시간을 줄서서 기다렸다. 또한 전봇대를 만들려고 산림을 베는 바람에 우리의 허파가 쪼그라들었고, 세운 전봇대가 넘어져 우리의 눈과 귀와 신경이 마비가 되었다. 좀 더 빨리 전달하려던 케이블을 끊어 버렸다. 포악해지는 쓰나미, 허리케인뿐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동식물과 생태계까지 우리 발목을 잡는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더 먹으면 더 빨리 늙는단다. 죽음을 향한 인생길 빨리 가서 뭐하랴. 과연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면 주인이 바쁠 필요가 뭐가 있나. 만물의 영장인가,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인가? 해와 달과 바다와 산은 동일한데, 인간은 갈수록 빨라진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갈수록 빨라지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달리는 기차가 가속도를 내는지 차안에 있는 사람은 모른다.

자연은 알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과속을 하고 있는지. 뉴저지 고속도로 표지판도 말한다. “Slow Down, Speed 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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