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andy 때문이야

2012-11-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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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그림의 집안이 왜 이렇게 캄캄해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전기가 꺼졌어요” “왜?” “샌디 때문이에요” 이번에는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그래, 허리케인 이름이 샌디였다. 그녀가 남긴 흔적이 어린이들의 그림에 잘 나타났다. 쓰러진 나무, 허물어진 집들, 꺾어진 철기둥, 물에 잠긴 자동차들, 고무배를 타고 다니는 도로...등 어마어마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하거나 뉴스미디어로 보고 들은 샌디의 후유증이다. 물은 우리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지만, 이토록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옛부터 물난리, 불난리를 무섭게 보는 까닭은 남김없이, 사정없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때문’이란 말은 이렇게 부정적인 원인을 말할 때만 사용되는 것일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연구심이 많기 때문에 드디어 놀라운 발명을 하였다, 부지런하기 때문에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일상생활에서 건강에 유의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일이 드물다, 얼굴과 몸매가 예쁘기 때문에 미스 유니버스가 되었다, 가정교육에 열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자녀들을 좋은 일꾼으로 키웠다... 등은 긍정적인 사고 방향이다.

이어서 샌디 때문에 나타난 좋은 일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자연의 위력을 체험하였다, 자연의 재해를 최대한으로 막는 연구를 계속하자, 또 재난을 당한 지역과 사람들을 힘껏 돕자, 끈기있게 복구사업, 재건사업에 힘쓰자, 어디 그 것 뿐인가. 많은 사람들이 친척이나 친구의 안부 전화나 e-mail을 받았다.

오랫동안 격조했던 친지들이 이 지역의 재난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큰 재난에서도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정전이 계속되는 동안 잊었던 문명사회에 감사하며, 살아있음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이다. 이렇듯 샌디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새롭게 보게 하였다.

앞에 예거한 일들은 샌디 때문에 잊었었던 일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자연 현상은 처음부터 대항해서 싸워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다. 우리가 자연 현상 그대로 이해하고, 최대한으로 대비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할 수 밖에 없다. 즉 잘 다스리면서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이다. 노자(老子) 다섯째 가름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말이 있다.
하늘과 땅이 ‘스스로 그러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김용옥 해설 참조) 따라서 허리케인 샌디를 스스로 그러한 모습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노자의 ‘자연’은 명사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산업화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기후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불가항력인 기상 현상으로만 보고 있는 지구의 재난을 우리 스스로 창출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승자박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 협력하고, 산업 기술 개발 제일주의, 생활의 편리함 지상주위, 경제 최고주의...등의 폐단을 고려하여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을 위함이다.

-허리케인 샌디-
지금쯤 어디만큼 갔을까/ 그대로 심술꾸러기/ 그대로 장난꾸러기/ 그대로 훼방꾸러기인 지/ 알고 싶다 샌디./ 지금쯤 얼마만큼 쉬었을까/ 양쪽 날개 접고/ 두 눈 살포시 감고/ 두 다리 쭉 펴고/ 쉬었을까 샌디./ 다시 만나는 날/ 정다운 얼굴로/ 따뜻한 목소리로/ 우리 친구가 되자, 샌디.

“이모, 난 허리케인 샌디가 아니에요.” 남쪽에 사는 조카한테서 전화가 왔다. 세상에 ‘샌디’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허리케인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다. 우리는 착한 샌디, 장난꾸러기 샌디 모두를 잘 알고, 그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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