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변모하는 가정폭행 사건

2012-11-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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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 통역사)

형사법원에서는 가정폭행 사건만 다루는 법정이 따로 있다. 이 법정은 한인들의 사건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 한인들의 가정폭행 사건이 갑자기 많아져서 어떤 사회적 배경의 변화가 그 원인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로 한국의 경제가 아주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때 무작정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들은 아직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고 자연히 가족 간의 화목도 유지되기 어려웠는지 많은 가정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이 법정에 한국인 사건이 거의 매일 같이 배정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차차 이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없어졌고 결국에는 한인 사건이 가장 적게 배정되는 법정이 이곳 가정폭행 사건 법정이었다. 그렇던 것이 최근에 와서 또다시 한인들의 가정 폭행사건이 부쩍 늘고 있다. 마침 시기가 경제적으로 불경기 중이라서 그때와 같은 현상이 다시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번에는 종래의 여건과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생겨난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요즈음의 가정 폭행 사건은 발생 사유가 경제적인 가정 문제에서 발단된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가족 구성원간에 경제 외의 다른 이유로 일어난 사건들이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혼인한 부부 사이가 아닌 동거인인 경우가 많고 또 그 중에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은 유학중인 학생신분이 많은 것이 놀라운 변화이다.(법원에서는 결혼한 부부사이가 아니더라도 동거인 사이의 사건은 이 법정에서 취급한다.) 이런 신분의 사람들이다 보니 분쟁의 원인도 부부간의 일상적 가정문제의 다툼이 아닌 전혀 다른 원인 때문인 것이 많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동거를 하는 동기는 첫째는 애정관계인 연인 사이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문제가 생겨서 법정까지 비화되는 동거인들을 보면 연인 관계와 다른 동기로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관계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한 예로 최근에 동거중인 한 젊은 남자 유학생이 폭행혐의로 체포되어 온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라는 동거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한 피해 상황이 꽤 심각한 폭행으로 되어 있어서 입건 법원에서 상당한 액수의 보석금을 걸고서야 재판을 받았다. 폭행관련 사건으로 법원에 입건되면 우선 피해자와의 접근 금지명령이 내려지는데 이후로는 어떤 종류의 접촉도 금지되는 것이므로 만나는 것은 물로 전화조차 금지된다. 물론 남자는 이후로 별거중인데 며칠이 지난 뒤 여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주 친근한 태도로 먼저 전화를 걸어 왔다. 다시 만나자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화해하고 달랜다는 기분으로 영화관도 가고 같이 많은 액수의 샤핑도 해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헤어지자 말자 곧 바로 경찰에 가서 만났던 사실을 신
고하여 접근금지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 청년은 이미 두 번에 걸친 접근금지 명령 위반혐의로 입건되어 이제는 심각한 중범혐의 사건으로 격상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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