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탈북자의 정치집단

2012-11-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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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여기가 평양이야? 서울이야? 왜 못 날리게 하는 거야. 우리는 반공 탈북자란 말이야” 얼마 전 임진강변에서 탈북자로 구성된 ‘북한민주화행동연합’에 의해 대북선전 전단을 담은 대형풍선을 북한에 날리려는 행동을 경찰이 저지하자 이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탈북자들이 쏟아낸 항변이라 한다(서울 일간신문, 방송 보도).
공권력에 대한 반항이요 도전이다. 반공이라는 깃발만 높이 쳐들면 어떤 과격행동도 통한다는 타성에 젖어든 그런 행동이다. 이명박 정권이 입성하면서 탈북자들의 조직적이요 집단적인 정치행동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탈북자들을 지켜 볼 때마다 조국 대한민국의 헌정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안겨준 어떤 사건을 연상한다.

1958년 1월 진보당간첩사건이라는 희대의 정치공작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당수 조봉암이 1심에서 사형구형(검사 조인구)을 받았는데 선고공판(판사 유병진)에서 5년형이라는 파격적인 감형선고를 받았다. 며칠 후 일단의 반공청년단원들이 “용공판사 때려죽이자”외치면서 백주에 몽둥이를 휘두르며 법원에 난립하였다. 2층 판사직무실에 있었던 유병진 판사는 2층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가다 발목이 부러졌다. 그 유명한 법원난동사건이다.
조봉암은 2심 3심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4.19혁명 후 유병진 판사는 한 언론에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조봉암에 대한 5년형도 가슴 아픈 선고였다.”


반공청년단! 그들은 이승만 자유당정권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6.25전쟁 그리고 휴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인민군 포로로 넘쳐났다. 이들은 제네바협정에 따라 북한으로의 송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UN군 관리 하에 있는 이 인민군포로들은 UN군사령관 맥아더장군의 동의도 없이 이승만대통령이 밤중에 전격적으로 석방시켰다. 실로 세기적인 사건이다. 이때 석방된 인민군포로를 이름하여 ‘반공청년’이라 했다. 이 가운데 일부 청년들이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단체를 조직하여 이승만 독재정권의 정치테러집단으로 변신하여 백골단, 딱벌대 등으로 진화해 갔다. 멸공 북진통일을 국시로 삼던 독재치하에서 ‘반공청년단’은 선량한 시민 앞에 백안시당하던 ‘하수구’같은 존재였다.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에 와서 반공투사로 거듭나려는 생각일랑 버려야 할 것이다. 북한 독재치하를 탈출해왔다는 ‘탈북자’라는 타이틀 자체가 ‘결사반공투사’임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 절대다수 국민 그리고 해외동포들은 탈북자들이 허기진 창자를 움켜쥐고 압록강 두만강을 필사적으로 넘어오던 당시의 초심을 잊지 않고 죽은 듯이 조용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문화 , 예술 아니면 사회봉사를 통하여 제2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데 참다운 보람을 느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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