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있는 사람이 더하다

2012-1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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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 (부국장대우/경제팀장)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을 지켜보며 지인들과 나눈 얘기 한토막.
“일국의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자기 집을 구입하는게 말이 돼?” “뭐, 딱히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아닐테고, 그냥 편법이라고 생각했겠지.” “나중에 아들한테 물려줄 때 양도세 안낼려고 한 것 같은데, 너무 치사한 것같아.”“국격 어쩌고 하면서 나라 망신을 제대로 시키는구만.” “(대통령이) 준재벌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고작 수억원 때문에 그런 짓을 할까?”
“그래서 있는 놈이 더하다고 하잖아.”
“…”
내곡동 사저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 퇴임후 거주할 사저를 아들 명의로 구입하고, 대통령 아들이 내야할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국가가 대신 대납한 일이다. 이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와 청와대가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매입한 것은 지난 2011년 5월. 이 부지는 총 9필지이다. 이중 일부는 ‘수양’이라는 한정식 건물이 있었던 곳이며 나머지는 개발제한 구역 그린벨트였다. 이시형씨와 청와대가 이 사저 부지를 매입하는데 사용한 비용은 대략 54억원이다. 공시지가 19억2,000만원에 비해 2.8배 높은 금액이다. 특히 사저 부지의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땅을 이시형씨는 528분의 330을, 청와대는 528분의 198로 분할해서 구입했다. 또 나머지 땅도 청와대와 이시형씨 지분이 섞여 있다고 한다. 이 경우 이시형씨는 약 23억원, 청와대는 약 30억원에 매입해야 했는데, 실제로는 이시형씨가 11억2,000만원에, 청와대는 42억8,000만원에 매입했다.

하지만 사저 지분율은 이시형씨가 전체 대비 54%이고, 청와대는 46%이다. 23억원에 구입할 것을 11억2,000만원에 구입했으니 적어도 10억원 이상의 차익을 본 것으로 추정되고, 국가는 그만큼의 손실을 본 셈이다. 아들 명의로 구입한 것은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이고, 편법 증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 청와대가 시가보다 비싸게, 이시형씨 지분까지 대납한 것은 횡령 의혹이다. 단순한 편법이나 실수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황당한 것은 이같은 명백한 사실에도 검찰이 불기소한 것이다. 심문도 없이 대통령의 아들이 제출한 서면조사만으로 무혐의처리했고, 나중에 담당 검찰이 대통령 일가를 재판에 넘기는 것이 부담됐다는 고백까지 해 부실수사 논란을 빚고, 결국 특검으로 가게 됐다.
대통령과 가족, 인척, 측근들의 비리야, 어느 정권이든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충분히 보고, 겪어왔다.
다만, 이번 정권은 국가의 사업을 이용해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재테크’ 개념이 강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국가의 사업은 원래 여러 이익집단들이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예를들어 인천공항의 민영화 문제를 보더라도, 민영화를 통해 지분을 매입하려는 집단이 있고 현재의 실적을 내세워 공기업을 옹호하는 입장이 있다. 양측 모두 자신의 명분과 논리가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하는 일은 어느 논리가 장기적인, 국가적인 차원에서 옳은 것인가를 판단하고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공항 민영화의 경우 여러 가지 허점과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으며, 여당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통령 친인척과 직접 관련된 업체가 개입돼 있어 특혜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권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재테크에 목맨 사기업을 떠올리게 한다.

단군이래 최대 사업이라는 4대강 사업이나 기간산업인 철도에 대한 민영화, 공기업의 사유화 등 이같은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 정권의 비리는 대체로 체면이나 염치가 없다는 느낌이다. 내곡동 사저문제만 해도 들키지 않았다면 그렇게 진행됐을 것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좋아한 말 중 하나가 ‘국격’이다. 국가의 품격을 말하는 것 같은데, 국제 대회를 유치하고, 수출을 많이 한다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품격은 돈으로 살 수 없고, 행동과 철학에서 나오는 것이다.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진정한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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