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우르릉 쾅!’ 깨달은 밤

2012-11-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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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 우르릉 쾅!’ 천정에서 무언가 넘어지며 들려오는 소리다. 아파트 6층, 제일 위층에 사는지라 천정은 곧 지붕 바로 밑이다. 몰아치는 허리케인 ‘샌디’의 파워가 무언가를 넘어트린 모양이다. 저녁 10시가 넘었다. 무엇인지 올라가 볼 수도 없다. 아파트 메니저에게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창문을 타고 내리치는 빗발들이 더욱 불안하게 한다.

지붕위에서 넘어진 물체가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우르릉 거리며 굴러다닌다. 이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계속해 천정만 바라본다. 걱정이 앞선다. 금방이라도 천정이 부서지며 물벼락이 칠 것 같다. 메니저에게 뛰어가 같이 지붕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룸메이트가 말린다. 어떻게 밤을 보냈는지 눈을 떴으나 잠을 설친 기분, 영 떨떠름하다.


뉴저지에 사는 큰 딸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 왔다. “엄마! 전기가 다 나갔어요. 온 동네가 깜깜해요. 추워요!” 보스턴의 작은 딸이 또 엄마에게 전화 해 왔다. “엄마! 아직 보스턴은 괜찮은데 엄마 사는 뉴욕은 어때요? 조심하세요.”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뉴스를 보니 허리케인 ‘샌디’가 보통 센 게 아닌 것 같은데 다들 괜찮으냐!” 난리다.

‘샌디’가 몰아치던 날, 자동차 주차를 안전한데다 해야겠다하고 전철 아래 주차장으로 가니 틈 하나 없다. 동네를 돌며 안전한 곳을 찾았으나 허탕이다. 큰 나무들이 울창한 도로변에는 자동차 주차 공간이 있으나 더 안전한 곳을 찾았다. 스무 바퀴는 돌았나보다. 없다. 그냥 나무 밑 널려 있는 도로변에 주차해야 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샌디’가 기승을 더 부린다. 자동차를 옮겼다. 아파트들 사이 한 도로변이 비어있어 큰 나무 아래지만 주차를 했다. 태풍이 치더라도 빌딩 사이라 좀 안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먼저 주차했던 그곳은 고목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 자동차들을 덮치고 길에 길게 누워 있다. 자동차를 옮긴 게 천만다행이었다.
허리케인 ‘샌디’가 지나간 후유증이 대단하다. 2001년 쌍둥이빌딩이 테러로 무너졌을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지하 전철역과 수면보다 낮은 터널들엔 물이 들이차 운행이 중단된 곳이 수없이 많다. 지상전철도 전기가 끊겨 운행이 안 된다. 차로 30분이면 갈 거리가 4시간 5시간이나 걸린다. 걷는 게 빨라 모두들 걸어서 다닌다.

가스가 또 문제다. 뉴저지와 뉴욕은 가스를 넣기 위해 마냥 기다려야 한다. ‘샌디’가 할퀴고 간 뉴저지는 주유소 10곳 중 한 곳만 문을 열었다. 전기가 안 나간 곳의 주유소다. 가스를 넣기 위해 늘어선 자동차들을 경찰이 통제한다. 뉴욕은 주유소의 가스 공급이 아예 끊겼다. 다리와 터널들이 통제되자 주유공급차 운행이 중단된 것이다.

브루클린에서 퀸즈로 직장을 다니는 한 사람은 자동차로 출근하였으나 직장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차를 세운 후 약 1시간 걸어서 직장에 왔다. 이유는 가스 때문이다. 직장까지는 갈 수 있으나 돌아갈 때 가스가 떨어질까 그랬단다. 어떤 사람은 주유소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전기보일러 중단으로 샤워를 못한다 등등. 불편이 극에 달한다.

늘 타고 다니던 전철과 버스의 일상적 대중교통수단. 그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지냈던 지난날들이다. 대중교통수단과 전기가 이렇게 귀할 줄이야. 조그만 늦어도 왜 늦게 오냐며 불평했을 전철과 버스가 그렇게 좋은 줄을 모르고 살아왔다. 3시간, 4시간, 5시간을 걸어서 직장과 집을 오가야 하는 이런 불편함을 알고야 고마움을 알게 된다.

‘샌디’가 지나간 후 뉴욕은 그런대로 제 자리를 빨리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질서를 지키려하는 운전자들과 주민들, 자원봉사자들의 봉사, 그리고 시의 발 빠른 수습책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그래도 완전 복구가 되려면 앞으로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한편, 경제적 손실 면에선 몇 백억 달러가 될 것이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것은 사람에 의해서다.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무너진 경제적 손실과 인명피해는 천재(天災)에 의한 것이다. 천재를 가져오는 하늘. 무섭지 않은가. “우르릉 쾅!” 무엇인가 지붕위에서 떨어진 소리에 불안으로 잠을 설쳤던 그 밤. “아무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해도 하늘과 땅이 노하면 사람의 문명은 한 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깨달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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