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굶주림 문제

2012-10-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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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장 지글러(Jean Ziegler)라는 사회학자가 있습니다.

필자가 그의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에 대한 글을 계속 써 온 그는 기아문제를 연구하는 이름 있는 학자입니다. 스위스 출생인 그는 제네바 대학과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하고 2000~2008년 유엔 인권위 식량 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였으며, 2008년에 유엔 인권위 자문위원으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의 저서에 실린 통계와 정보는 신뢰할 만합니다.

지글러 교수가 열거하는 기아문제의 이유는 대강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북반구 선진국 사람들이 엄청난 부를 가지고 호화롭게 살면서도 빈국들에게 나눠 주는 일에는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세계정치와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의 끝없는 이윤 추구로 제3세계가 계속 유린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제3세계에 만연한 부정부패로 국가경제가 수탈되고 유엔의 지원조차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때문입니다. 넷째로 제3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쟁으로 그들의 삶이 계속 파탄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이상고온으로 제3세계 국가들의 농경지가 계속 사막화되고 전례 없는 가뭄과 홍수로 곡물 생산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 AFO(식량농업기구)의 집계에 의하면 2007년 현재 9억2,500만명이 심각한 기아와 만성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는데 이 수치는 매해 7,500만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글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 옥수수 생산량만 가지고도 기아 인구를 충분히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옥수수 생산량의 4분의 1은 부유한 나라들의 소들이 먹고 또 나머지 옥수수들은 바이오 연료 생산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물엿 생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남은 옥수수는 그들 나라의 창고에 쌓인 채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기아 국가들이 그 비싼 옥수수를 살 엄두도 못 냅니다. 선진국 국민들의 식탁에 오를 맛있는 쇠고기를 위해 소들은 배불리 먹고 제3세계 사람들은 굶어 죽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는 주장입니다.

지글러 교수는 더 소킹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1970년 9월 열린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정당 ‘인민전선’의 아옌데라는 젊은 후보가 36.5%를 득표해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소아과 의사로서 영양실조에 따른 아동 사망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치에 나섰고 당선되면 15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 배급하겠다고 공약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부패 공부원들을 척결하고 공약대로 분유를 무상 배급하기 위해 목장들의 우유생산을 점검했습니다. 그 결과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칠레의 우유생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네슬레 측에 우유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네슬레는 아옌데의 개혁으로 칠레가 정상화될 경우, 칠레 내 우유사업 독점이 어려워질 것임을 알고 그의 우유제공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3년 간의 긴 협상과 투쟁에도 네슬레는 요지부동이었고 서방의 원조도 끊겼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군부와 반대세력을 움직여 군부 구데타를 일으켰고 1973년 9월11일 오후 2시30분 아예데와 그의 동료들은 대통령궁까지 진격한 우파 군인들에게 살해 당했습니다. 그리고 칠레 국민들은 다시 굶주림에,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개혁의 꿈이 거대 다국적 기업에 의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풍요한 밥상 너머 저 쪽에 배고픔으로 몸부림치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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