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학 하기

2012-10-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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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 박재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불교 하기’의 일환인 ‘치유명상’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요즈음, 그동안 철학분야에서 소극적으로 다루어졌던 ‘철학을 철학하기’ 또는 ‘치유로서의 철학’이 근래 들어 활기를 띠게 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철학 하기’란 단순히 형이상학적 관념론에 머물러 박제된 학문으로 치부될지도 모를 철학을, 삶의 현장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철학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실천철학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사실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 종교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망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이나 종교의 최종 목적은 뭐니 해도 인류의 행복이다. 현대의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황폐해지고 약물과 의술로도 완치가 불가능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때에 철학자들은 철학이 제한적이나마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의술의 한 형태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듯 하다. 철학자들 역시 여타 심리치료 분야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삶의 행복은 마음의 평정에서 온다고 했다. 그들은 마음의 평정을 위해,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해독제로서 먼저 명상을 권한다. 명상은 반성적 성찰이며 내적 통찰인 관조를 의미한다.

철학자들은 철학은 실재와 자신을 냉철하고 철저하게 사색하고 반성하는 학문으로서, 철학적 반성은 ‘철학 하기’의 시작이며 그 자체가 치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철학하기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런 감정들을, 반성적 성찰을 통해 그 인과적 연쇄를 통찰하여 결과로써의 고통이 고통일 수밖에 없는 원인을 파악하고 인식하게 함으로써,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알게 하는 인식적 통찰력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나아가 그에 따른 확고한 ‘마음 지킴’으로 그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정화시켜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하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로 자신의 삶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조형할 수 있게 하는 치유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편 철학치료란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한 상담치료이다. 대체로 실천철학을 도모하는 철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로는, 철학적 상담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자 활동이고 그를 통해 상호 통섭적 소통을 하는 철학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상호신뢰가 필요하다. 그 신뢰를 위해서는, 위장된 동정심이 아닌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상실로 인한 슬픔, 좌절과 절망으로 점철된 마음의 서사를, 서로 공유하려는 감정인 공감을 느껴야 한다. 공감은 마음속에서 상대방과 함께하는 ‘맞울림’이라는 공명현상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공감으로 상응하는 감정인 공명은 감동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마음의 통증에 대한 심리적 위안과 용기, 재기의 의지를 가지게 만든다고 한다.

어쩌면 ‘철학하기’란 상식적이고 당연한 심리치유의 한 방법이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학문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용성과 효용성의 구체적 제시로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부각시켰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아무튼 철학은 이미 자체로 치유인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이란 우리 사고의 매듭을 푸는 일이다.” 세기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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